
“도파민은 쾌감의 물질이다.” 이 말은 너무 자주 반복되어 이제 상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현대 신경과학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도파민은 단순히 쾌감을 주는 물질이 아니라, 뇌가 '이건 중요한 일이야'라고 판단할 때 보내는 주의 신호다. 이 신호를 '위상성(phasic) 도파민 모드'라고 부르는데, 특정 행동이 중요하다는 신호를 뇌에 보내 다음 행동을 유도하고 동기 부여를 촉진한다. 쾌감 자체는 오히려 베타엔돌핀 같은 오피오이드 계열 신경물질과 관계가 깊다. 예를 들어, 선물을 받기 전 기대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도파민의 역할이고, 선물을 실제로 받았을 때 느끼는 쾌감은 베타엔돌핀이 만들어낸다. 이후 아이의 몸에서는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이런 선물을 준 사람에 대한 감사와 따뜻한 감정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 두 가지 아름다운 기억은 도파민 덕분이다.
도파민은 긍정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예상보다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을 때에도 중요한 학습 기전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쳤을 때, 뇌는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라는 신호를 보내며 도파민 분비 패턴이 변화시킨다. 이러한 '예측 오류' 신호는 우리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집중력을 높여 다음에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력을 올리는데도 도파민이 관여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나는 이유는 뇌에서 도파민이 '중요한 일'이라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도파민을 단순히 쾌감 중독의 신호로만 이해한다. 특히 게임을 좋아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도파민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게임을 하면 도파민이 나와서 중독된다”는 말을 듣고 자녀의 게임 행동 전체를 문제로 간주한다. 그러나 아이가 게임을 통해 도전하고, 전략을 세우고, 이겼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쾌감이 아니다. 그것은 뇌가 “내가 뭔가를 해냈어!”라는 신호를 받는 것이고 자신에 대한 유능감과 존중받을 만하다는 느낌, 즉 자부심이 생기고 강화되는 과정이다. 이처럼 게임 속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성취감과 자부심은 단순한 쾌감을 넘어 건강한 자기 정체성과 자기효능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학습의 촉진제가 된다.
종종 부모들이 '도파민이 중독을 유발한다'는 오해 때문에 아이들의 게임 활동을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도파민 유발 상황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도파민 체계는 크게 두 가지 모드로 나뉘는데, 앞서 설명한 위상성 도파민 외에도 강직성(tonic) 도파민이 있다. 강직성도파민은 뇌가 안정적으로 깨어 있고, 주의집중, 동기부여, 감정조절 등에 관여하는 시스템이다. 강직성 도파민이 저하되면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우울증, 무기력, 집중력 저하 같은 현상들이다.
도파민은 관심과 동기를 이해하는 실마리로 활용되어야 한다. 왜 아이는 지금 이 게임에 집중하는가? 게임 속 어떤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부모의 태도는 자녀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네가 게임 속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배우는지를 알고 싶어.” 그런 부모의 관심은 아이에게 “나는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을 준다. 이때 도파민은 단순한 '쾌감 회로'가 아니라, 자부심 회로로 작용하게 된다. 그 순간 아이의 기억 속에는 자신을 믿고 존중해준 감사한 부모의 기억이 평생 동안 남는다. 참고로 이런 기억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에 빠짐없이 도파민이 관여된다. 그러니 쾌락과 중독으로 매도되는 도파민은 억울하기만 하다.
도파민은 단순히 쾌락의 불꽃이 아니라, 자부심과 의미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심리적 나침반이다. 도파민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녀가 도파민의 힘으로 성장과 배움의 기쁨을 온전히 경험하도록 돕는 부모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럴 때 도파민의 누명은 벗겨지고, 부모와 자녀 그리고 우리 사회 모두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심리학박사 zzazan0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