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꼼꼼한 국세청 가상자산 과세 준비체계가 필요하다는 국정질의가 나오고 있지만, 동시에 과세 시행 유예나 폐지 고려한 밑밥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16일 국세청 본부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세청 국정감사에서는 가상자산 과세 준비 미비가 지적됐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9월까지 무려 124조에 달하는 돈이 바이넌스 같은 외국 거래소를 통해 국내에서 나간 것으로 파악된다”라면서 이는 5대 거래소에서 취합한 숫자로 국세청 내부에 이를 직접 수집하는 시스템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OECD가 2027년 개발예정인 가상자산 자동정보교환 체계(CARF·카프)의 경우 개인 거래가 아니라 총량 거래만 감지하도록 하고 있어 과세망이 개별거래 정보를 포착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카프 같은 데는 인별 1년간 총액 기준으로는 거래 내역을 받을 수는 있다”면서 거기에 가입된 국가가 한 51개국 정도에 불과해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자금 세탁이 주로 이루어지는 거래소들은 가입이 안 돼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가상자산이 고액 자산가들의 불법적인 증여 상속, 불법 마약 자금 등의 돈 창구가 되어 있다며, 지금이라도 국세청에서 추적을 좀 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거래소로 거래가 안 되는 디파이 구조 같은 경우도 지금 전혀 대비가 안 돼 있는데, 이 역시 국세청에서 잡아낼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자금흐름 파악은 과세 필수 요소이자 범죄수익 및 돈세탁 방지와도 직결돼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암호화폐 사기(스캠 코인) 의혹을 받는 캄보디아 ‘프린스 그룹’에 대해 약 20조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압수하는 한편, 프린스 그룹 창립자 천 즈 회장을 기소했다.
한국 국세청은 이러한 과세정보를 알지 못하는데, 위에서 지적한 시스템적 문제보다도 정권과 국회의원들이 법만 만들고 눈치 보며 시행을 미룬 탓이 더 큰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양당 합작으로 2022년 예정이었던 가상자산 과세를 2025년, 그리고 2027년으로 두 번이나 미뤘다.
2024년 12월 10일 국회 본회의 가상자산 과세 유예안은 재석 275명 중 찬성 204명, 반대 33명, 기권 38명으로 가결됐는데 이때 금융투자업계 및 투자자들의 숙원인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해버렸다.
가상자산 유예 때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써먹었던 논리가 ‘과세 준비 미비’였다.
본지가 2021년, 2024년 정부 당국자들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당사자들은 시행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당국자들은 국회의 태도를 지적했는데, 실수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시행하는 것과 실수가 전혀 없어야 시행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다.
전자는 실수가 있어도 시행하자는 취지고, 후자는 준비 열심히 하란 것 같지만 아예 하지 말란 뜻이다.
2027년 시행을 앞두고 양당 상황은 뜨뜻미지근하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가상자산 과세 유예’, ‘금투세 폐지’로 중도층 표심을 공략한 바 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지난 8월 간담회에서 2027년 카프 시스템이 가동되더라도 준비 미비로 시행은 어려울 것이라며 재재유예 쪽에 의견을 보탠 바 있다.
가상자산 업계에선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기대하고 있다.
이들의 셈범은 내년에도 앞으로도 경제성장률이 좋지 않을 것인데 국회 양당이 ▲선진 가상자산 국가 지향 ▲청년들의 희망 ▲2028년 4월 총선 따위의 슬로건으로 2026년 세법개정안 검토 시 2년 유예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2029년 시행을 앞두고는 또 대선을 이유로 미뤄서 다음 정권에 짐을 떠넘기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말로 양당이 가상자산 과세를 잘 대비하라는 뜻인데 과거처럼 무결점 과세를 이유 삼아 가상자산 유예를 노리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두 거대 양당은 가상자산 과세가 필요하다고 늘 말하면서, 정작 시행할 때는 준비가 안 됐다며 유예하기 바빴다는 점이다.
본지가 고액자산 컨설팅 업계를 취재한 결과, 업계는 최근 미국발 비트코인 붐에 편승해 ‘세금 없는 수익’으로 홍보하면서 강남 자산가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줬고, 증여 컨설팅도 활발했다고 말한다.
한편, 임광현 국세청장은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이 시스템은 다 구축을 해놓고 있다”면서 “시행에 대비해서 거래소 등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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