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5.02.08 06:00 수정 2025.02.08 06:00 일본 나가노현 = 데일리안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도쿄 아닌 나가노 고집한 엡손의 뚝심 본질은 '친환경'
2023년 연말 일본 기업 최초로 전 사업장 RE100 달성
재생에너지 자체 조달 및 친환경 플라스틱 연구 진행 중
"2030년까지 약 1조원 투자, 2050년엔 탄소네거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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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은 당장은 큰 이익을 보지 못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큰 비즈니스 기회입니다."
자사 제품에 친환경 기술을 적용하는 회사들이 줄곧 등장하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세우겠다는 제조사가 등판했다. 바로 프린터·프로젝터 제조사로 잘 알려진 세이코엡손이다. 이미 2023년 말 일본 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자사 글로벌 전 사업장 RE100 달성에 성공한 엡손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세우고, 2030년까지 약 1000억 엔(한화 약 1조원)을 들여 환경 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제조 기업의 특성상, 친환경을 고집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지속 가능 경영을 이어가는 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탓이다. 엡손의 지난 2023년도 연간 실적 영업익이 647억 엔(한화 약 620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연간 전사 연간 영업익의 두 배가 가까운 금액이다. 해당 금액을 '실적'이 아닌 '환경'을 위한 재원으로 투입하겠다는 엡손의 취지엔 어떤 기조가 녹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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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앞 스와 호수를 더럽혀선 안된다."
"겨울이 되면 근처 스와 호수가 얼어서 표면이 얼어 솟아 오르는 현상 '오미와타리'를 볼 수 있는데, 최근 5~6년간 해당 현상을 아예 볼 수가 없습니다. '신이 호수를 건너간 자리'를 의미하는 오미와타리는 겨울철 나가노현 스와시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볼거리였는데 현지 기온 상승 등 영향으로 인해 볼 수 없게 됐어요."
기무라 카츠미 세이코엡손 주식회사 지구환경전략추진실 부실장은 지난 5일 엡손 본사에서 회사의 탈탄소 경영 전략을 소개하면서 자사 사옥 주변을 둘러싼 '스와 호수'를 언급했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먼 이야기가 아닌 자사 본사 사옥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풍경인 만큼, 제조기업 입장에서도 이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엡손이 도쿄로 사옥을 옮기지 않고 우리로 치면 강원도 산골에 해당하는 나가노현 스와시를 지키는 것도 크게 보면 환경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창업자 야마자키 히사오는 1942년 회사를 세우면서 "스와 호를 절대 오염시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고 한다. 이후 엡손의 행보는 변함없이 이어졌다.
1988년 정밀 공업에서 활용되던 프레온가스가 논란이 되자 엡손은 곧바로 이를 전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1993년 세계 최초로 전 공정에서 이를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대체 수단도 없던 상황이었다. 다소 무모한 도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엡손에게 '친환경'은 실적 그 이상의 뚝심이자 철학이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29개국 총 98개 사업장에서 쓰는 전력 100%가 재생에너지다. 연간 40만톤 정도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절감됐다. 2017년 1%에 불과했던 재생에너지율이 약 7년 만에 100%로 올라선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엡손은 '환경비전 2050'도 추진 중이다. 이는 205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 지하자원 소비 제로의 약속을 담고 있는 비전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ESG 경영을 하겠다면서 허울 좋은 구호를 내세우는 경우가 빈번한 것에 비해 엡손은 구체적인 수치를 앞세웠다. 회사는 최근 '지구환경전략추진실'을 별도로 꾸린 뒤 야스노리 오가와 사장이 매월 직접 환경전략 회의를 주재한다. 2030년까지 1조원 투자에는 구호 뒤엔 '공급망 내 온실가스 배출량 200만t 절감'이라는 목표가 붙었다.
'친환경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제조사 입장에서 더욱 중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기무리 카츠미 부실장은 "단기적인 수익성도 매우 중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석유 자원 및 소재 등을 모두 수입에 의존한다. 에너지 부족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고, 이는 단기적으론 손실이지만 멀리 보면 기업 지속성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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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엡손은 제조 기업이다. 생산 현장에 전력이 365일 24시간 안정적으로 조달돼야 하는데 재생에너지의 경우 날씨 등 여건에 따라 전력 조달이 불안정할 수 있다. 여기서 엡손이 선택한 정답지는 '재생에너지 자체 생산'. 미사용 목재 등을 태워 에너지로 활용하는 '미나미 신슈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나가노현 남부 지역에 건설 중이다. 내년 중 가동이 목표다.
기무리 카츠미 부실장은 "2021년부터 엡손은 나가노현 정부와 협의해 수력발전소를 만드는 '신슈 Green 전원 확대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재생에너지의 지속적인 구매가 신규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가노현 기업 5곳과 함께 연내 총 5개의 수력발전소를 가동한다. 엡손은 전력 판매 수익 일부를 나가노현 내 재생에너지 전원 개발 및 보급 촉진에 활용 중이다.
재생에너지 뿐만 아니라 엡손은 친환경 자재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야스노리 오가와 세이코엡손 대표는 6일 기자들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엡손의 독자적 섬유화 기술인 드라이 파이버 테크놀로지(Dry Fiber Technology)를 통해, 생성된 폐지 및 의류 섬유와 플라스틱 소재를 복합화 해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목재에도 이를 적용해 콘크리트 내 소재를 만드는 방안을 연구 중인데 이는 지속 가능 친환경 자재 활용 방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드라이 파이버 테크놀로지를 통해 제작한, 폐지를 넣으면 새 종이가 나오는 '페이퍼랩' 신형 버전도 시장에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엡손은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이산화탄소 흡수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2050년을 기점으로 탄소네거티브 실천을 위해서는 이산화탄소를 마이너스로 하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엡손은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선택적으로 뽑아내 이를 분리해 고정화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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