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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얼빈에서 진행 중인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의 투혼 가득한 도전이 연일 화제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1년 앞두고 열리는 전초전 개념의 국제대회라 더 큰 관심이 쏠린다.
이번 대회에서 금빛 낭보를 전한 태극전사 중 독특한 이름이 눈에 띈다. 전남체육회 소속의 바이애슬론 선수 예카테리나 에바쿠모바(35). 엄연한 대한민국 국적자지만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귀화 선수, 이른바 ‘푸른 눈의 한국인’이다. 대한바이애슬론협회는 평창올림픽을 2년 앞둔 지난 2016년에 국가대표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귀화 선수 3명을 영입했는데, 에바쿠모바도 이때 대한민국과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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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대회와 이어진 베이징 대회에서 연이어 입상에 실패하며 조용히 잊히는 듯하던 에바쿠모바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극적으로 존재감을 되살려냈다. 바이애슬론협회는 “귀화 프로젝트가 9년 만에 비로소 결실을 보았다”며 반색한다.
스포츠에서 귀화 선수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해당 종목의 국내 인프라로는 기대하기 힘든 수준의 국제 경쟁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국내 선수들이 해당 선수와 함께 훈련하며 경기력 향상 노하우를 전수 받을 기회도 열린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귀화 선수를 국가대표로 발탁하는 건 여전히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프로젝트다. 앞서 라건아(리카르도 라틀리프)라는 성공작을 배출한 농구대표팀은 뒤를 이을 귀화 선수 대상자(코피 코번)를 점찍어 두고도 영입 작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표팀에 귀화 선수를 보강하는 방안을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모두 소득 없이 중단했다.
귀화 선수 활용이 딜레마로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 한쪽에 여전히 존재하는 부정적 시선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외모와 언어, 사고방식이 다른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거둔 성과를 ‘대한민국의 것’으로 인정하는 걸 불편해한다. 오랜 기간 ‘단일민족’을 우리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으로 여기며 살아온 데 따른 부작용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국경이 무너지고 다양한 가치관이 뒤섞이는 글로벌 시대에 ‘순혈주의’는 더는 미덕일 수 없다. 나와 어딘가 다르더라도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 느끼는 이에게 문을 열어주고 ‘우리’에 포함하는 게 새 시대에 맞는 판단 기준이다.
에바쿠모바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하나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게 자랑스럽다”는 에바쿠모바의 환한 미소 속에서 귀화 선수에 대한 인식 개선 가능성만큼은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한다. 어제의 딜레마를 내일의 드라마로 바꿀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