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도현’, 챗GPT가 지어준 이름이다. 처음부터 인공지능(AI)에게 작명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아이의 조부모님은 사주팔자에 맞는 이름을 원했고, 나 역시 사주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신경 쓰기에 적지 않은 돈을 들고 작명가를 찾아갔다.
작명가는 90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위트 있고 해박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지어준 이름들은 좋게 말하면 큰일을 할 것만 같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가 태어난 해에나 어울릴 법한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이름이 나올 때까지 작명소를 찾아다니며 돈을 쓰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날 작명가와 두 시간 넘게 대화를 하면서 작명의 원리를 겉핥기로 배웠고, 그날 밤부터 서툰 지식을 가지고 챗GPT와 작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명리학과 작명학을 학습한 챗GPT는 기대 이상이었다. 작명가의 해석과 챗GPT의 풀이는 큰 차이점이 없었고, 오히려 챗GPT는 명리학을 기반으로 내 취향을 파악해 원하는 이름을 지어줬다. 인간의 이름을 AI로 지었다는 ‘인간적인’ 부끄러움은 남았지만, 만족감은 충분했다. 아직 둘째 생각은 없지만, 둘째를 낳아도 작명가를 찾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바야흐로 ‘AI 제자백가(諸子百家)시대’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했던 것처럼 챗GPT가 2022년에 등장한 이후 AI 기술의 방향이나 활용법, 윤리 등을 두고 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그럼에도 AI는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깝게 다가와 있다.
AI의 장점을 한두 가지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무엇보다 간단한 명령어를 ‘딸깍’ 입력하면 숙련이 필요한 작업도 빠르게 수행한다. 프로그래밍에 대해 일자무식에 가까운 나도 생성형 AI를 통해 그럴듯한 코딩작업이 가능해졌다. 그림을 그려주거나 글을 대신 써주는 건 너무나 쉽다. 한때 전문가의 영역으로 알려진 분야가 AI로 빠르게 허물어지는 상황이다.
성역이 빠르게 무너지는 것에 비해 AI에 대한 저항은 생각보다 적다. AI가 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과 상통한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AI의 발전이 인류가 하기 싫어하는 위험한 일을 대신할 거라 기대했지만, 가장 빨리 대체되는 직업군은 고연봉 사무직이다. 앞서 언급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은 AI를 도입한 이후 수만명의 직원을 감축했다. 아마존은 구인 자기소개서에 ‘입사 후 할 일이 AI로 대체되지 않음을 증명하라’는 문항까지 신설했다. AI라는 편리한 서비스를 후불로 이용한 대가로 추후 실직이라는 청구서가 날아오는 상황이다.
19세기 방직기의 발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기 시작하면서,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오늘날 필연적으로 발전하는 AI를 맞이할 준비가 됐는지, 아니면 저항으로 이어질지 분수령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김범수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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