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3년 전만 해도 세상에 없었던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기술이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제 다음의 ‘보이지 않는(invisible)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투자할 때다. 8월 초, 버클리의 ‘에이젠틱 AI 서밋’에서 오픈AI의 첫 벤처캐피탈(VC)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가 이렇게 말했다.
인도델리공과대(IIT)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1980년대 초 스탠퍼드대 MBA 시절, 당시 세상에 없던 ‘컴퓨터 워크스테이션’을 전기공학과 박사과정에서 연구개발한 앤디 벡톨샤임이 이 기술의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자, 비즈니스 플랜을 만들어 VC 클라이너 퍼킨스에서 30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받아 벡톨샤임과 선마이크로시스템을 공동창업하고 첫 CEO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후 VC 투자자로 변신한 그는 수많은 혁신 스타트업에 투자한 실리콘밸리의 비저너리다. 그는 “오픈AI의 첫 VC 투자자가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AI가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연구하고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력공백 제조업 해법은 AI고도화
단순자동화 넘어 사람·AI협업돼야
인재 등 ‘보이지 않는’ 기반서 혁신
결국 사람·교육…국가가 투자해야

코슬라의 도움을 받아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창업한 벡톨샤임은 스탠퍼드대 데이비드 체리튼 교수와 함께 혁신 기술 기업을 연쇄 창업했다. 대표적인 게 2004년 세운 데이터센터의 필수요소인 컴퓨터 네트워크 스위치를 공급하는 아리스타 네트웍스이다. 시가총액이 1700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이다. 두 사람은 각각 300억 달러의 부를 일궜다. 이들은 구글을 창업한 스탠퍼드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각각 10만 달러의 수표를 써준 엔젤 투자자로도 유명하다. 이들의 궤적은 “보이지 않는 믿음과 준비”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은 언제나 눈앞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는 혁신가들을 존중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산업화 시대의 추격자 모델을 탈피해야 하는 한국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첫 방문에서 “미국의 제조업과 조선업의 재건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어떻게 그 길을 갈 것이냐가 관건이다. 한국 또한 중국의 도약 때문에 위협받는 제조업과 조선업의 경쟁력 도약이 절박한 상황이다. 단순히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 규모를 늘린다고 해서 경쟁력이 제고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은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노동 인구 감소와 숙련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자동차·조선·반도체 산업 현장 곳곳에서 젊은 기술자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중견 기술자의 퇴직 공백이 커지고 있다. 미국처럼 제조 기반이 약한 나라는 물론, 한국처럼 제조 전통이 강한 나라조차 숙련 인력과 운영·경영 인력의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할 해법은 명확하다. AI 고도화다. 전통적인 자동화 수준을 넘어, 제조 기업 내의 다양한 지식을 고도화해 제조 비즈니스 전반을 자동화하는 에이전트 기반의 기업 운영 체계가 필요하다. 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에이전트가 학습·계승하고, 운영과 의사결정을 동시에 보조하는 시스템 없이는 숙련 인력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한두 개의 공정을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전체가 에이전트 네트워크로 재편되는 수준의 혁신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제조 AI를 떠올릴 때 로봇 등 실물 하드웨어에 탑재되는 피지컬(Physical) AI를 생각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보이는 AI’다. 생산성을 높여주지만 충분치는 않다. 진정한 변화는 조직 전체의 시스템 전환, ‘엔터프라이즈 AI’에서 발생한다. 전문가를 도우며 현장을 운영하는 가상 AI, 공장을 지휘하는 스마트 에이전트, 그리고 물리적 손발 역할을 하는 에이전트인 휴머노이드, 이들이 결합하는 미래 기업의 모습은 기존의 경영학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모습이다. 계층·직무·도식이 사라지고, 사람과 에이전트가 함께 사고하고 결정하는 유기적 협업 구조가 표준이 될 것이다.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데이터 아키텍처, 언어 모델, 신뢰 기반 운영, 그리고 이를 움직이는 문화와 인재다. 국가는 이런 ‘보이지 않는’ 기반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이 보여주듯, 이런 보이지 않는 토대가 결국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가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육이다. 챗GPT가 많은 일을 대신해주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남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AI와 협업하며 새로운 가치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능력이다. 한국의 교육은 암기와 시험 위주에 머물러 있다. 산업 현장은 빠르게 변하는데 교실은 여전히 정답을 맞히는 데 집중한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이 AI와 협력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사회 전반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핀란드와 싱가포르의 사례처럼 문제 해결 능력, 융합 사고, 실험과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가 한국 교육에 뿌리내려야 한다.
AI의 시대, 진정한 승자는 눈에 보이는 것에 투자하는 나라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을 준비한 나라, 그 근본적인 기반은 결국 사람과 교육에서 나온다.
차상균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 석학 펠로우,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