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독도에서 발생한 소방헬기 추락사고를 둘러싼 소방 당국과 손해보험사 간 다툼이 영국 중재기관까지 갔다가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됐다.
14일 더불어민주당 박정현 의원실과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청은 지난 8월 서울 중앙지법에 DB손해보험사(이하 DB손보)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 금액은 최소 78억원 이상이다. 두 기관이 소송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6년 간의 사정은 복잡하다.
소방청과 DB손보는 2019년 8월 당시 소방 당국이 운용하던 인명 구조 헬기 등에 대한 ‘항공보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다른 손해보험사도 계약에 참여했었는데 DB손보가 주 계약자였다. 이후 같은 해 10월 31일 독도 헬기장에서 응급환자를 태운 소방 헬기가 이륙 14초만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조종사와 구조대원, 환자, 보호자 등 탑승자 7명이 모두 숨졌다.
소방청은 기체 보상 처리를 위해 DB손보 측에 연락했으나 DB손보 측은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의 조사 결과가 나온 뒤 보상 여부 등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사고 원인이 기체 결함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경우 DB손보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면책 사유에 해당한다. 독도 사고 헬기는 프랑스 에어버스사가 생산한 EC225 기종으로 2016년 해외에서 기체 결함이 의심되는 사고가 보고된 적 있다.

이에 대해 소방청은 사고 헬기가 운용 범위 안에서 비행안전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감항(堪航)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기체 결함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통상적으로 사고 해결을 위해 손해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선 지급한 뒤 사조위 조사 결과에 따라 구상권을 청구하는 관례도 주장했다. 사조위 결과는 사고 발생 4년여 뒤인 2023년 11월 나왔다. 사고 원인은 기체 결함이 아닌 조종사 과실로 밝혀졌다. 그제야 DB손보는 사고 보험금 374억원을 법원에 공탁하는 방식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소방청은 DB손보의 ‘늑장 지급’을 문제 삼았다. 애초 보험금 지급 절차상 필요하지도 않은 사조위 결과를 기다리느라 유·무형의 손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소방청은 374억원 외에 100억원(상법상 법정이율 연 6%적용)의 지연이자 지급까지 요구했다. 보험금 지급이 지연될 경우 자칫 대체 인명 구조헬기의 구매·렌트 등의 절차까지 늦어질 수 있다고 한다.

반면 DB손보는 지연이자 지급을 거부했다. 보험금 지급 절차상 사조위 결정이 필요했다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두 기관 갈등에 지난해 1월 금융감독원이 나섰고, 소방청의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은 올 4월 100억원 아닌 ‘78억원 지연이자 지급’이란 조정안을 냈다. 그러나 DB손보는 이 조정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소방청과 체결한 항공보험 계약의 표준약관으로 삼은 영국의 ‘로이드 보험 약관’을 내세웠다. 해당 약관은 ‘분쟁 또는 의견 차이는 런던 중재로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DB손보는 이를 근거로 올해 7월쯤 영국 중재기관에 중재를 요청했다. 두 기관이 분쟁이 해외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소방청은 내부 검토 결과, 해당 약관에 동의한 적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영국 중재 절차에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서울 중앙지법에 DB손보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소방청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한 것은 맞다”라면서도 “아직 자세한 설명을 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박정현 의원은 “보험사가 (신용도 높은) 국가기관을 상대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국내가 아닌 영국에 소송을 제기한 이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역사에 남을 사건”이라며 “양측의 입장과 과거 유사 사건과 비교해 국정감사에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