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엔 관세 25%를, 중국에 대해선 추가관세 10%를 부과하기로 했다. 경제사(史)를 보면, 관세 공격은 보복을 부르기 십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캐나다 등이 즉각 보복을 천명했다. 중국은 미국의 가상 적국이나 다름없지만, 캐나다와 멕시코는 세계화 시대의 상징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파트너다. 이런 캐나다와 멕시코마저 트럼프의 제물이 되고 있다. 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연방정부 부채 약 5경2200조원
감세까지 실시되면 재정위기
트럼프는 관세로 위기 돌파 계획
관세 충격, 감세보다 30% 커
트럼프 곳간, 빚으로 가득
트럼프는 캐나다 등이 불법이민과 마약밀매 등을 방관해 미국의 안보에 해가 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정치 리더의 언어는 이중적일 때가 잦다. 명분과 속내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트럼프의 관세전쟁 이면엔 경제적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다. 바로 빚으로 가득한 국고다. 트럼프가 지난달 20일 취임하면서 넘겨받은 곳간엔 대략 36조 달러(약 5경2200조원)에 이르는 빚이 있다. 천문학적인 규모다. 게다가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미 국가부채가 35조 달러를 넘은 시점이 지난해 7월26일 전후였다. 반년 정도 만에 빚이 1조 달러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 미 경제는 2.3%(연율) 성장했다. 직전인 3분기 3.1%보다는 낮지만, 침체 조짐을 보이는 유럽 등과 견주면 탄탄한 흐름이다. 그만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과 견준 국가부채 비율이 낮아질 법도 하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15% 수준까지 낮아지다가 지난해가 저물 무렵엔 다시 120%를 넘어섰다.
또 다른 세수를 찾아서
미 정부의 이자부담이 심상찮다. 요즘 미 정부는 평균 3.3%의 이자를 내고 국채 등을 발행한다.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때와 견줘 꽤 낮아진 이율이다. 그러나 제로금리 시대인 2021년 당시 미 정부의 평균 금리는 연 1.5% 정도였다. 이때와 견준다면, 요즘 미 정부의 이율이 두 배 이상 높다. 그 바람에 연간 이자 부담이 1조1800억 달러(약 1476조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국방비(8420억 달러)보다 많다. 연방정부의 연간 세수 가운데 이자로 나가는 돈이 36.3% 정도에 이른다. 원금 상환까지 더하면, 미 정부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세수의 40%를 웃돈다. 한국에선 DSR 비율이 40% 이상이면 주택담보대출조차 받기 어렵다.
이런데도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 동안 감세를 공약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첫 번째 임기 때인 2017년 시작된 감세 혜택이 올해 거의 끝나는데, 이를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약대로 된다면, 내국세 수입이 연간 3000억~4000억 달러 줄어든다는 게 미 의회 예산국(CBO)의 분석이다. 이미 불어난 국가부채에다 감세까지 더해지면 미 정부 곳간은 파국의 벼랑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때 트럼프가 제시한 대안이 바로 또 다른 세금, 즉 관세다. 내국세를 깎아주는 대신 관세로 세수를 벌충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전면전 가능성
지난해 미국의 관세 수입은 약 1000억 달러 수준이다. 트럼프 2기 첫해인 올해 캐나다 등에 부과한 관세 때문에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보복관세 등으로 교역량이 줄어들고, 경제 성장이 더 둔화할 수 있다. 캐나다 등에 대한 관세 부과로는 감세가 야기한 세수 구멍을 메우기 어렵다. 다급해진 트럼프가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다. 바로 한국 등 모든 교역국을 겨냥한 ‘보편관세(universal tariff)’ 도입이다. 관세전쟁이 전면전으로 바뀐다.
보편관세를 매기기 위해서는 법을 고쳐야 한다. 법안이 의회 상·하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11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다. 입법 과정이 트럼프 뜻대로 이뤄지면, 관세 수입이 상당히 늘어날 수는 있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세금재단(Tax Foundation)에 따르면 보편관세가 도입될 경우 내년 관세수입이 3000억 달러대로 늘어난다. 이후 관세 수입은 점점 증가해 2035년에 4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시뮬레이션 됐다. 관세 증가분이 연간 2000억~3500억 달러 수준이다. 의회 CBO도 비슷한 예측치를 내놓았다. CBO에 따르면 2026~35년 사이, 10년 동안 관세 수입 증가분이 2조5000억 달러 정도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간 증가분은 2500억 달러다. 얼핏 보면, 트럼프가 감세로 줄어든 내국세 수입을 관세로 메운다는 계획이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전문가들이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한국 등이 포함된 전면전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최후 승자는 미국인 아닐 것
그러나 경제에서 셈은 단순하지 않다. 관세전쟁이 시작되면 물가가 오른다. 미국인의 실질소득이 감소한다. 세금재단에 따르면 이번 캐나다 등에 대한 관세 공격 때문에 가구당 실질소득이 연간 800달러 정도 줄어들 전망이다. 가구당 감세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관세가 야기한 실질소득 감소분과 견주면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다. 트럼프가 보편관세를 도입하면 GDP 감소 폭이, 감세가 낳은 증가 폭보다 30% 정도 클 것으로 의회 CBO는 예측했다. 관세전쟁의 최종 승자는 미국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최종 손익계산서는 트럼프의 퇴임 이후에나 나온다. 그때까지 그는 자기만의 셈법에 따라 관세전쟁 놀음에 열 올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