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엄마 농구단
‘포 위드 투 글로벌 마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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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창단, 미 복지재단 구단주
11개국 25명 선수들 함께 구슬땀
“우리는 도움보다 기회가 필요”
고향 떠나 타국생활 ‘동병상련’
경기 후 수다 떨며 끈끈한 연대
“‘너 나와야 돼, 집에만 있으면 안 돼.’ …마치 친언니처럼 저를 혼냈어요. 눈물 쏙 빠졌어요. ‘버스 탈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가냐’고 하니까 네이버 지도 보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은행 이용하는 법도 알려주고… 저를 집 밖으로 끌어냈어요.”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체육문화센터에서 만난 이수민씨(33·캄보디아 출신)는 농구단 활동을 하는 이유를 말하던 중 다른 언니 팀원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난 일화’를 들려줬다. “말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었어요. 집에서 애만 키웠어요. 이렇게 지내다간 우울증 같은 게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언니는 알았던 거죠. 자기도 겪어봤으니까…”
이수민씨는 2012년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왔다. 그리고 지난해 5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지인을 통해 ‘포 위드 투 글로벌 마더스’에 입단했다.
‘포 위드 투 글로벌 마더스’는 국내 유일의 ‘다문화가정 엄마 농구단’이다. 2023년 10월 창단했다. 구단주는 미국의 복지재단이다.
감독인 한국농구발전연구소 천수길 소장이 재단의 후원을 끌어냈다. 천 소장은 “제가 운영하는 다문화 어린이 농구단 대회 행사로 학부모 친선경기 행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죽기 살기’로 하더라. 한 어머니는 아예 ‘엄마 농구단’도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돌이켰다.
엄마들이 직접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돌며 스카우팅에 나섰다. 5개월 만에 엔트리 멤버 12명을 채웠고, 지금은 11개국 출신 25명의 선수가 뛰고 있다. 지난해엔 대회에도 두 번 출전했다.
성적은 5전5패다. 18골을 넣는 동안 180골을 먹었다. 처참한 성적에도 구단을 해체할 생각은 없다. 팀원들은 이 구단에서 ‘승리’보다 값진 걸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경기 끝나고 막걸리 한 잔씩 하시는 것처럼, 우리 어머니들도 훈련 끝나면 커피 한 잔씩 하세요. 온갖 수다가 꽃을 피웁니다.”(천 감독)
주제는 학원이나 병원 정보부터 사춘기 자녀 대하는 노하우까지 무궁무진하다. 이수민씨는 “원래 애 아플 때 시어머니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나이가 있으셔서 잘 모른다”며 “지금은 언니들에게 어느 병원이 용한지, 성조숙증 검사를 무료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물어본다”고 말했다.
나고 자란 나라가 다르고 말도 다르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만 출신 이숙혜씨(48)는 “모두 같은 처지”라고 말했다. “고향을 떠나 만리타국에 와서 남편과 자식 외엔 친구도 없어요. 놀이터나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한국 아줌마들을 부러워하는 외톨이들이죠.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몸을 부딪치고 땀을 흘려요.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동하죠. 그리고 패배의 아픔도 함께 나눕니다.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끈끈한 연대가 생겨요.”
이런 경험은 농구뿐 아니라 삶에서도 이어질 거라고 천 감독은 기대한다 “만리타국에서는 어려움이 한둘이 아닐 거예요.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 선수들은 ‘혼자서 끙끙 앓지’는 않을 겁니다.”
농구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그들은 공동의 목표도 조만간 이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훈련을 해요. 그나마도 집안일, 한국어 수업 등으로 매주 나오지는 못해요. 지금도 체력 훈련이 힘들어요. 왕복달리기 5번이 넘어가면 숨이 막히고 다리에 힘이 풀려요(웃음).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이수민)
“느리지만 실력은 분명 늘고 있어요. 올해 안에 적어도 1승을 할 거예요.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행사에서 일본 전통춤을 추는 이방인’으로 비치는 것도, ‘배려와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비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나카지마 아오이·46·일본 출신)
나카지마 아오이는 “우리는 도움보단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기회가 주어지면 누구 못지않게 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린 ‘한국을 밖에서도 보고, 안에서도 볼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