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이벤트’라는 게 있다. X는 ‘extreme’을 줄인 말이다. 발생 가능성이 아주 낮지만, 일어나면 사회·경제적으로 파급 효과가 큰 사건을 말한다. 원자력발전소 사고, 대정전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위험도는 더 커진다고 역설했다. 선진국이라면 이 같은 X-이벤트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한 나라의 힘이고, 실력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X-이벤트에 노출된 기업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지난달 SK텔레콤(SKT)에서 일어난 대형 해킹 사고는 또 다른 X-이벤트다. 해킹 대상은 고객 개인정보와 인증을 관리하는 홈가입자서버(HSS)다. 휴대전화는 그냥 전화가 아니다. 주식거래·은행업무 등 일상생활에서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유심정보 유출은 그간 잊을 만하면 발생했던 단순 개인정보 유출과 차원을 달리한다. 유심 정보로 복제폰이 만들어지면, 개인의 금융자산도 순식간에 털릴 수 있다.
X-이벤트에 대한 SKT의 대응은 재앙 수준이다. 지난달 18일 해킹이 발생했는데, 하루가 지나고서야 유심 정보 유출을 확인했다. 24시간 내에 이뤄져야 하는 신고는 이틀이 걸렸다. 사건 발생 열흘 만에야 유심 무상교체를 해준다고 밝혔으나 준비는 부족했다. 전국 대리점에는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대다수는 ‘유심 재고 소진’으로 허탕을 쳤다. 대안이라는 ‘유심보호 서비스’도 고령자 등 통신 취약계층에겐 어려운 데다 로밍 차단으로 외국을 오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헛일이다. 혼란이 수습되지 않으면 공포와 재난으로 이어진다. 국내 1위 통신사 위기관리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