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팝이 최근 불교와 밀접한 요소들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K팝 가수와 팬들이 불교에 빠져들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왜일까.
블랙핑크 제니의 첫 정규 앨범 ‘루비(Ruby)’를 보자. 이 앨범에 수록된 ‘Mantra(만트라)’에서 만트라는 주(呪)나 진언(眞言)으로, 기도나 명상을 할 때 외는 주문을 말한다. Man은 산스크리스트어로 마음을 뜻하고 tra는 도구를 뜻한다. 즉 내면의 힘을 찾아주는 말을 의미할 것이다. 불교에서 만트라는 불경을 외운다는 의미를 지닌다. 입으로 불경을 외는 것은 파동이 지닌 힘 때문이다.
제니는 ‘만트라’에서는 우선 예쁜 소녀들의 기준을 제시한다. “예쁜 소녀들은 불필요한 걸 신경 쓰지 않아.” 예쁨의 기준이 외형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쁜 소녀들은 트라우마에 갇히지 않아”라는 가사에서는 과거의 상처에 연연하지 않은 모습을 말한다. 그러니 “마음은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라는 가사도 이해가 된다. 드라마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하는데 극적인 성공이나 성취에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다.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지 않게 할 거야”라거나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할 거야”라는 구절은 상호 연대 지원을 의미한다. 그 미래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다. “아무도 우리의 밝은 기운을 흐리게 할 수 없고, 절대 좋은 시간을 망치지 않는다”라고까지 한다. 집착과 강박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신의 진면모를 찾거나 잃지 않으려는 것을 넘어, 같이 사는 상생의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또 다른 곡 ‘젠(ZEN)’은 발음이 제니와 비슷한데, 불교 용어 ‘선(禪)’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노래다. 가사에서는 평화롭고, 고요하고, 현재에 충실하며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강조한다.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한 부엉이 역시 불교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불교에서는 부엉이가 어둠에 빠진 이들을 빛으로 이끈다고 본다.
제니뿐만이 아니다.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처의 가르침에 관한 책 ‘초역 부처의 말’을 언급했는데, 이 책이 인터넷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책을 제치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10~2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탓인지 판매량이 무려 최대 29배 급증했다. 장원영은 집에서 쉴 때는 책을 읽는다면서 이 책을 추천했다.
젊은 층이 불교에 관심이 큰 것일까. 그보다는 젊은 세대가 자신을 우선하는 실용적 관점을 지녔고,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영성에 관심이 큰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특정 종교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만트라’와 ‘젠’은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며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 서구의 젊은 층에겐 동양적 가치관의 매력도 부각한다. 특히 ‘만트라’는 불교도는 물론 힌두교도도 공감할 수 있다. ‘젠’은 신라 시대 금관의 문양을 응용한 패션스타일로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제니의 이채로운 매력을 극대화한다. 문화 기호와 상징의 융복합이 공감과 설득력을 더한다.
가수 장원영은 ‘원영적 사고’라 불리는 긍정적 발언과 행동으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원영적 사고는 긍정 심리학의 맥락을 넘어 초(超)긍정의 마음가짐을 뜻하는데, 이는 불교의 맥락과도 닿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가 왜 장원영의 말에 주목하고 공감하는지다. 현실을 비관하거나 우울해하기보다는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젊은 세대가 불교에 관심이 있다거나 열광한다는 해석보다 더 중요한 점이다.
‘헬조선’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기보다는 어떻게든 하루하루 견뎌내려는 젊은이들이 K팝을 중심에 두고 모이고 있는 현상에서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해본다. K팝이 이런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한, 어떤 종교와 이념이든 융합해 세계 젊은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좋은 메시지를 입으로 외며 마음의 파동이 이뤄가는 선한 세상을 믿어보고 싶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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