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 미완의 낡은 노트들을 책으로 내다

2025-02-0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이 노래는 안정숙 지은 《언젠가 떠나고 없을 이 자리에》 수필집에 나온 노래다. 작가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곡 중 하나인 '보리밭'을 나도 무척 좋아한다.”라면서 “내가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 것은 시적 정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노래 자체의 정겨운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이다. 이 노래를 듣거나 나 혼자 흥얼거릴 때면 여지없이 어릴 때 아버지와 보리밟기가 정겹게 내 눈 앞에 펼쳐진다.”라고 써 내려간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보리밭을 밟았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책 첫 글 ‘잊혀지지 않는 한 아름다운 여인’에도 곰곰 생각하게 하는 내용을 속삭인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초가을이었다. 그날은 먼저보다 옷이 더 남루해 보였다. 때 묻은 손에는 칫솔이 하나 쥐어져 있었는데, 치약이라도 찾고 있는 모습을 하고 군중들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계속 읽어 내려가자니 한 정신을 놓은 여인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죄와 덕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는 인과율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명심하고 살아야 할 자연의 법칙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겨울날, 석양의 광풍루 기둥에 기댄 채 빛바랜 검은 무명 통치마에 산발한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나부끼며 천진하게 웃고 섰던 맨발의 그 여인은 어디 갔을까”라고 되뇌면서 아름답지만, 슬픈 여인에 대한 추억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중간쯤에는 ‘세월 속에 잊혀가는 세월호’란 글이 보인다.

“세월호 사태를 보며 나의 종교와 내 신앙의 무력함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회에 아무런 역할이 없는 종교가, 신앙이 무슨 소용일까? 뼈저리게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저무는 팽목항 제방에 쭈그리고 앉아 끝없이 아들을 기다리던 한 어머니의 뒷모습이 오늘도 잊히지 않는다. 누가 그 어머니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 아픈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세월 속에 세월호는 오늘도 점점 잊혀가고 있다.”

이 얘기는 비록 안 작가만의 속내는 아닐 것이다. 세월호가 꼬리만 보이면서 바닷속에 잠겨가는 것을 보는 온 국민의 가슴속에는 시커먼 상처만 타들어 갔었다. 그런데 똑같은 사실을 놓고 “나의 종교와 내 신앙의 무력함을 반성하는” 마음을 가진 이는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수필, 이는 작가의 속내를 잔잔히 털어놓는 글이런가? 하지만, 같은 수필에도 이같이 진한 속내를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진한 속내를 느끼는 것은 비록 나만의 일은 아닐 터다. 요즘 슬기전화(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책을 읽지 않는 세태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더구나 강성 유튜브의 폐해 속에 세상이 온통 좌우로 갈라져 혼돈의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이때 이 수필집을 읽고 잔잔한 마음으로 내 속내를 가다듬어 보는 것은 어떨까?

버리지 못한 미완의 낡은 노트들을 책으로

《언젠가 떠나고 없을 이 자리에》 지은이 우향 안정숙 대담

- 평소에 담담한 메모를 하곤 했던 것이 이 수필집으로 이어진 듯한데 언제 어떤 계기로 수필집을 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나?

“소녀시절부터 일기와 독서의 소감을 적었던 것이 글쓰기의 첫걸음이었던 같다. 그 습관이 나도 모르게 글을 쓴다는 것이 매력적인 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나도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고 고희가 되어서야 그 오랜 꿈을 이루게 되었다.”

- 지난 옛이야기들을 회상하는 글들이 많은데 잔잔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줍니다. 따로 기록해 둔 것은 아닌지?

“물론이다. 어릴 때부터 인상깊었던 일의 기억과 제 고향 시골생활에서 겪은 아름다운 추억들을 늘 기록해 왔다. 제게는 버리지 못한 미완의 낡은 노트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것들을 추리고 다듬어 최근에 쓴 글과 함께 책으로 묶게 되었다.”

- 5부는 다른 나라 풍경을 주로 들려주는데 그 가운데 하나만 들라면 어떤 것인지와 그 까닭은?

“5부는 대부분 나라 밖 여행이나 외국생활에서 얻은 기록들이다. 특히 중국 개혁개방 시절 몇 년 동안 대륙에서 생활하며 체험한 주변 이야기들도 들어 있다. 그 가운데 한 꼭지를 든다면 4부의 "북경에서 온 편지들"이다. 펄벅이 쓴 《페킹에서 온 편지》 주인공처럼 90년대 초 우리 가족이 자유국가와 공산국가로 나뉘어져 살 때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 안 작가에게 ‘수필집’이란 무엇일까?

“수필이 자신이 경험한 느낌이나 생각을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산문형식의 글이라 하지만, 나의 수필은 왠지 이야기가 담기는 형식의 글이 많은 것이 특징인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경향은 오랜 시간 글쓰기가 소통되지 않고, 책상 서랍 속에 묵혀 둔 것에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 이 수필집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꼭지가 있다면?

“4부의 제목이기도 한 ‘빗소리와 빛소리’다. 여러 해 전 친구와 함께 <가을>이라는 명상적인 영화를 보고 느낀 경험을 옮긴 글이다. 빛과 소리가 둘이 아니고 빛소리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인 느낌이 들었던 그때가 제게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 책 이름이 《우향수필집》으로 되어 있었는데 우향은 필명인가?

“처녀 시절 데이트할 때 남편이 이름 대신 부르기 좋으라고 지어준 아호다. '우향(芋鄕)'이란 의미는 토란밭이 있는 시골이란 뜻이다. 내 고향은 경남 안의인데 제가 어릴 땐 토란밭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 부군 손병철 선생도 많은 책을 낸 걸로 아는데 혹시 부군에게서 책을 내는데,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나?

“우선 미루어 오던 출판을 고희의 기념으로 꼭 내야 한다며 격려와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딸과 함께 원고 교정과 이쁜 책이 나올 수 있도록 편집 디자인에도 좋은 아이디어를 보태주었다. 여담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던 젊은 날과 유학시절 제가 그의 시집을 서너 권 내준 적도 있다. 품앗이인 셈이다.”

- 수필집을 내려는 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귀띔이 있다면?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출간하라고 말하고 싶다. 글이란 어차피 완벽할 수 없는 법이니, 거듭 책을 내면서 아쉬움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글솜씨도 점차 발전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도 두 번째 수필집을 준비하고 있지만, 할머니가 되어서 책을 내다보니 여러 가지로 기력이 달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99살에 시집을 낸 시바타 도요 할머니도 있긴 합지만ᆢ, 한번 흘러가고 마는 세월은 우릴 다시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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