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 요건 충족하는지 의문"
"불구속 재판받게 해달라" 보석 청구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유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직 전공의가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이용제 판사는 22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모 씨의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법정에는 정씨의 재판을 보러 온 사직 전공의들로 방청석이 가득 찼다.
정씨 측 변호인은 "객관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한다. 피고인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고 이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면서도 "그러나 법률적으로 피고인의 행위를 스토킹 범죄의 성립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혐의를 부인한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스토킹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반복적, 지속적으로 일으켜야 한다"며 "그러나 피고인의 행위가 스토킹 범죄 요건을 충족시키는지 상당한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대부분 피해자들의 개인정보 공개행위는 1~2회에 그쳤고 이것이 반복적,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또 피해자 1100명 중 수사기관에서 30명 정도의 진술을 확보했는데 그 중 일부만이 피고인의 행위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겪었다고 진술했고 나머지는 단순한 불쾌감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또 일부 피해자는 피고인의 행위가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야기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이 사건은 일반적인 스토킹 범죄와 다르다"며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명단을 게시한 행위 외에 어떠한 해를 가하는 행위를 한 바 없고, 같은 동료인 의사들에게 피고인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할 이유도 없다"며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의 행위는 스토킹처벌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된 조항이 적용돼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언급한 조항은 지난해 개정된 스토킹처벌법 제2조 제1항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개인정보 등을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배포 또는 게시하는 행위'를 스토킹 행위에 추가한 것이다.
검찰은 "피고인은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의료인들을 비난할 목적으로 온라인에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를 배포했다"며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 집단에 있고, 집단 내 힘의 불균형으로 다수가 소수를 따돌리는 '사이버불링'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은 "피고인이 구속된 이후 사정변경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보석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 발언기회를 얻은 정씨는 "증거기록이 7000장에 달한다는데 현실적으로 구치소 반입이 불가하다"며 "방어권에 많은 제한이 있어 (보석을) 허가해 준다면 성실히 재판에 출석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양쪽의 의견서를 검토한 뒤 보석 여부를 추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공판은 오는 12월 13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전공의·전임의·의대생 등의 명단을 작성한 뒤 의료계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와 텔레그램 채널 등에 '감사한 의사'라는 제목으로 여러 차례 글을 게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정씨가 피해자 1100명의 소속 병원·진료과목·대학·성명 등 개인정보를 온라인상에 총 26회에 걸쳐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