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은 왜 판사를 ‘국민의 벌레’라 했을까?

2024-11-21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우리는 지난번에 ‘이유인의 말로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한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제 오로지 한가한 사람을 위하여 한가한 이야기로 한가한 의문을 풀어보고자 한다.

일제 앞잡이 일진회(一進會)가 창립될 즈음 그에 대립하는 단체가 1904년 창립되었으니 이름하여 ‘공진회(共進會)’. 나중에 ‘열사’라고 불리게 될 이준이 회장이었고 총무는 윤효정이었다. 윤효정은 1898년 일본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 관련자 우범선을 처단하고 귀국했다. 그는 1906년 이준이 세운 헌정연구회를 기반으로 대한자강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힘썼다. 《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라는 재미있는 책을 지었는데 여기 이야기는 그 속에 들어 있다.

잡배들의 국정 농단이 갈수록 심해지자, 공진회는 비분강개했다. 공진회는 정부에 60명의 잡배 명단을 보내면서 처벌을 요구했다. 일주일 뒤에 답장이 왔다. “60명의 명단 가운데 잡배는 하나도 없으니 그리 헤아려주기 바라노라.” 공진회 회원들이 격분했다.

깊은 밤 비밀리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죄가 가장 무거운 이유인 전 법무대신을 우선 잡아들이기로 했다. 이유인을 찾아가 “공진회에서 각하에게 상의드릴 일이 있으니 같이 가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이유인은 몸을 부르르 떨며 화를 참지 못한다. “한낱 무뢰배 집단이 무슨 회를 칭하며 국정에 대해 망언을 늘어놓고, 이렇듯 나라의 재상을 겁박하다니 무엄하기 짝이 없구나. 너희들의 청을 거절하노라.”

이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진회 회원들이 일제히 방으로 들이닥쳐 그를 인력거에 태워 종로의 공진회 사무실로 끌고 갔다. 백성들은 높은 벼슬아치가 민간인들에게 잡혀 온다는 말을 듣고 그 진풍경을 보려고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들은 이유인의 죄상에 대해 저마다 수군거렸다. 그 소리가 마치 대밭을 훑는 바람 소리 같았다.

이유인이 공진회 사무실에 들어오자, 회장 이준이 앉기를 권하고 총무 윤효정이 본격적으로 심문하기 시작한다. 윤효정이 죄상을 묻자, 이유인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관복에 걸친 띠의 술이 사시나무 떨듯 한다. 이유인은 결국 자신의 죄를 자백한다. 서기가 그의 말을 기록한 조서를 보여주고, 혹시라도 잘못된 것이 없느냐고 물으니 “없다.”라고 한다. 이유인은 손을 덜덜 떨면서 자필 서명을 한다.

공진회 사무실 주변에 운집한 사람들이 “당장 우리 손으로 처단하자.”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목말을 타고 군중 사이에서 일어나 기왓장을 빼어 들고 당장이라도 사단을 낼 기세다. 또 어떤 이는 기다란 곤장을 높이 세워 들고, 이유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등 분위기가 살벌했다.

결국 수백 명의 순사와 수십 명의 헌병이 가까스로 이유인을 평리원(사법기관)으로 호송했다. 이준과 윤효정은 며칠 뒤 체포되어 법정에 선다. 검사가 “너희들의 죄는 나라의 대신을 욕보이고 민중들의 소동을 일으켰으니, 중형이 마땅하다.”

판사 나으리가 13년을 선고한다.

이준이 장탄식을 하고는 오른손을 번쩍 쳐들어 나무 칸막이를 치니 손이 찢기어 피가 솟구친다. 이준은 법관을 향해 손을 휘두르며 독설을 퍼붓는다. “너희들은 백성을 보호하는 법관이 아니라 백성을 해치는 벌레이니 이 피나 빨아 먹어라.” 그리고는 꺼어이꺼어이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다.

금방 풀려나온 이유인은 이준과 윤효정을 사형시키기 위하여 백방으로 애를 썼으나 성공하지 못한다, 분노한 백성들은 “두 사람은 죄가 없다. 잡배들을 숙청하려 했을 뿐이다. 즉시 석방하라”고 외쳤다. 결국 두 사람은 얼마 뒤 사면된다.

세월이 흘렀다. 이유인은 늙은 몸을 고향에 의탁하였다. 고향에는 그가 부정 축재한 돈으로 사들인 땅이 널려 있다. 결국 그의 부정축재가 여러 건 드러나자, 정부에서 경무관 정상회에게 이유인을 잡아 오라 지시한다. 그때 자기를 보내달라고 간청하는 경무관이 있었으니 안경선이라는 사람이었다. 정부에서 청을 들어주자 안경선은 수행원 몇 명을 데리고 이유인의 집으로 갔다.

이유인은 안채에 있다가 서울에서 온 사람이 만나기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바깥채로 나온다. 방문을 열고 안경선을 보자마자 그는 “안경선!” 이름 석 자를 외치면서 방바닥에 엎어진다. 온 몸에서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손과 발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더니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안경선은 지난날 이유인이 물고를 내 죽인 안경수의 5촌 조카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친아버지 같은 안경수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그 도움으로 관계에 진출했다. 안경수는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청설해 초대 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가 훗날 이유인에게 죽임을 당하자, 조카 안경선은 원수를 갚을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참이었다.

이유인은 고향에 내려와 넘치는 재물 속에 지내면서도 안경선이 복수를 노린다는 소문을 듣고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던 차에 자신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를 보자 숨이 넘어가고 만 것이다.

이유인의 돌연사를 두고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죽은 안경수가 산 이유인을 잡았다.”

이유인들이여 조심할진저. 헌데 이준이 벌레 취급한 판사 나으리들은 무고하셨을까? 그것도 좀 궁금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추기로 하자.

- 다음으로 이어진다.

참고한 책 : 《대한제국아 망해라》, 윤효정 지음, 박광희 편역,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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