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가 약 3만3000㎡ 규모로 확장된 초대형 주얼리 생산 시설 ‘마니파투라 불가리(Manifattura Bvlgari)’를 공개하며 재개소식을 열었다. 단일 브랜드의 주얼리 생산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장인정신과 첨단 기술, 지속 가능성이 공존하며 럭셔리 주얼리의 미래를 제시하는 곳. 지난 16일 마니파투라 불가리를 직접 찾아갔다.

로만 주얼러의 발렌차 생산 기지
패션의 도시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차로 약 1시간을 달려 마니파투라 불가리가 있는 도시 발렌차에 도착했다. 발렌차는 피렌체·비첸차와 함께 이탈리아 주얼리 산업의 중심지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해 스위스·프랑스 국경과 가깝고 바다까지 인접한 지리적 환경을 배경으로 1800년대부터 주얼리 제조업이 발달했다. 세계적인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들을 포함해 현재 약 1300개가 넘는 주얼리 기업이 이곳에서 금세공과 주얼리 제조를 한다. 이 중에서도 불가리는 가장 큰 규모의 제조 시설을 갖춘 브랜드로 꼽힌다.
발렌차 도심을 지나 고즈넉한 풍경의 길을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웅장한 규모의 검은색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불가리’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세계 최대 럭셔리 주얼리 제조 시설을 자랑하는 곳, 마니파투라 불가리였다.

이른 아침부터 이곳엔 재개소식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단과 이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불가리 임직원, 불가리 모회사인 LVMH 그룹 관계자, 정치·종교계 인사 등으로 북적였다. 최근 LVMH 워치 CEO로 임명돼 현재 직책 외에도 위블로·제니스·태그호이어 등 시계 브랜드를 총괄하는 장-크리스토프 바뱅 불가리 CEO는 현장에서 직접 손님을 맞으며 새로운 마니파투라 불가리에 대해 소개하느라 분주했다. 이곳이 그에게, 또 브랜드에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
1884년 로마에서 설립된 불가리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장인정신으로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고대 로마 건축과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대담한 형태, 풍부한 색채의 젬스톤 조합, 정교한 세공 기술을 통해 불가리는 이탈리아 예술적 삶의 아이콘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지금은 주얼리 외에도 시계, 가방, 향수, 액세서리, 호텔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지만, 언제나 모든 제품을 자국에서 생산한다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철학은 유지했다.
이 철학이 구현된 공간이 바로 마니파투라 불가리다. 모든 주얼리 제품의 전 제작 공정을 처리하기 위해 큰 규모의 제조 시설이 필요했다. 실제로 이곳에선 브랜드의 대표 주얼리 컬렉션인 비제로원, 세르펜티, 디바스 드림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얼리가 생산된다.


규모 2배, 장인은 3배 늘어
2017년 처음 약 1만4000㎡ 규모로 문을 연 마니파투라 불가리는 이번 확장으로 두 배 이상 몸집이 커졌다. 초기 한 동이었던 건물은 세 개동으로 늘었고, 직원 수도 개장 당시 370명에서 현재 약 1100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불가리는 4년 뒤인 2029년까지 장인 500여 명을 추가 고용해, 생산 능력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번 확장은 불가리가 제조 공정을 내부로 통합해 브랜드 가치를 지키려는 수직 통합 전략의 일환이다. 바뱅 CEO는 이곳을 “원재료 조달부터 최종 제작까지 전 과정을 한 지붕 아래 아우르는 불가리 수직 통합 전략의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늘어난 생산 능력으로 다양한 공정을 한 곳에서 소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제품 품질과 브랜드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운영 철학 된 지속 가능성
이곳의 건축과 시설, 운영 방식은 ‘장인정신과 지속 가능한 가치의 조화’라는 경영 철학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먼저 환경 측면에선 시설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 전체를 재생에너지로만 사용한다. 사용량의 절반은 건물 옥상과 주차장에 설치한 4100여장의 태양광 패널을 통해 자체 생산한 에너지로 자급하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여기에 플라스틱 프리 정책, 수자원 관리 시스템 등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운영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전체 주얼리 제작에 ‘책임 있는 주얼리 협의회(Responsible Jewellery Council)’의 관리 체인 인증을 받은 금만을 사용하는데, 이는 업계 최초의 사례가 됐다. 아울러 공방 부지 8000㎡엔 토착 수목을 키우고, 약 100만 마리 꿀벌을 위한 벌통을 설치하는 등 지역 생태계 회복과 공존을 꾀했다.


럭셔리 제조의 미래를 보다
거대한 규모와 장인 정신, 첨단 기술이 융합된 노하우,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제조 시스템 등 마니파투라는 럭셔리 주얼리 제조의 미래를 제시하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이곳에 새로 들어선 브랜드 최초의 주얼리 교육기관인 ‘스쿠올라 불가리(Scuola Bvlgari)’다. 주얼리 제조에 대해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이곳은 이탈리아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교육기관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타리 디자인 스쿨(Tarì Design School)과 협력해 전통적인 금세공 기법부터 최신 주얼리 제작 기술까지 약 1년 과정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뛰어난 성적의 수료생은 불가리 그룹에 합류해 경력을 이어갈 기회도 주어지니, 불가리는 스쿠올라 불가리로 본격적인 장인 양성 생태계를 구축한 셈이다.

“이탈리아 금세공 예술의 상징, 그리고 지속 가능성 분야의 기준점”
인터뷰 ㅣ 장-크리스토프 바뱅 불가리 CEO
마니파투라 불가리의 의미를 말하다

불가리의 주얼리 제조 시설 마니파투라 불가리는 장-크리스토프 바뱅 불가리 CEO의 역작이다. 2013년 불가리 그룹에 합류한 그는 불가리를 가장 성공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올해는 마니파투라를 세계 최대 규모의 주얼리 제조 시설로 완성시키며 새로운 럭셔리 주얼리 생태계를 완성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마니파투라 불가리에 대한 일문일답.
-일반 주얼리 제조 시설과 비교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불가리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인가.
“브랜드의 심장이자, 철학을 구현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세계 최대의 하이 주얼리 전용 제조 시설일뿐 아니라, 이탈리아 금세공 예술의 상징이자 지속 가능성 분야의 기준점이다. 또한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대표한다. 장인 정신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지켜내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나는 이곳이 매우 자랑스럽다.”
-자부심을 가질 만큼 규모와 시스템이 대단하다. 이곳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그 중심엔 ‘사람’이 있다. 이곳은 재능을 길러내고 그 재능이 꽃필 수 있도록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보석’ 같은 공간으로 설계됐다. 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미래의 탁월함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다. 이번 대규모 확장을 통해 1100명인 장인 인력을 2029년까지 160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는 생산 능력의 확대를 넘어 장인정신과 혁신,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의지다.”
-2017년 개관 당시 이미 유럽 최대 주얼리 생산 시설로 주목받았다. 추가적인 확장이 필요했나.
“개장 직후 건물 옥상에 올라 주변의 개발되지 않은 부지를 보면서 확장을 결심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생산 시설이 아니다. 이곳을 글로벌 주얼리 산업의 시작점이자 상징으로 만드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제품 수요가 증가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능력을 확대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이탈리아 주얼리 산업의 전통과 장인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 발렌차 지역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 것은 이탈리아 제조업의 위상을 강화하는 결정이었다.”
-불가리는 장인정신과 혁신이란 브랜드 철학을 갖고 있다. 이는 마니파투라에서 어떻게 적용됐나.
“둘 간의 균형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마니파투라에선 수작업의 정교함과 첨단 기술의 정확함을 결합한 제조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장인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금세공 기법은 CAD 디자인, 레이저 절단, 정밀 조립 기술과 함께 사용한다. 이를 통해 다른 브랜드에선 사용하지 않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제작 방식이 만들어졌다.”

마니파투라 불가리는 주얼리 생산 시설인 동시에,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시설이다. 바뱅 CEO는 2017년 개장 때 신입 직원을 위한 ‘불가리 주얼리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신입 직원은 불가리 아카데미에서 6개월 동안 집중 교육을 받고 난 뒤에야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제품의 품질 수준을 높이고, 브랜드 고유의 스타일을 지키기 위한 인재 양성 시스템이다. 올해엔 누구나 입학해 금세공과 보석 세팅 등을 배울 수 있는 주얼리 학교 ‘스쿠올라 불가리를 추가 설립했다.
-제조 시설 내에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생산성만 생각한다면 불필요한 투자로 볼 수도 있는데.
“늘 인재 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불가리 아카데미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는 직업 계약과 무관하게 최고의 장인으로부터 순수하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교육을 통해 최고의 인재를 발굴하고 브랜드에 합류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불가리만의 고유한 DNA다.”
-이외엔 어떤 방법으로 인재를 확보하나.
“탁월함에는 국경이 없다고 믿는다. 그 결과 지금 마니파투라에선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 등을 포함해 31개 국적의 인재가 함께 일하고 있다. 특히 2023년부터 정부와 협력해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이 불가리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난민 프로그램은 이들에게 직업을 구할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이탈리아 사회의 통합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는 장인정신, 포용, 사회적 책임을 결합한 우리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윤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