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 하우스에는 각자 브랜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백’이 있기 마련이다. 루이 비통에게 ‘카퓌신(Capucines)’ 백은 하나의 상징으로 통한다. 완벽함에 가까운 장인정신과 창의성,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의 기준을 결집한 가죽 공예의 ‘명작’. 각 잡힌 실루엣과 우아한 디테일, 품위 있는 균형감은 카퓌신의 첫 인상이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단단한 감각이다.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만한 가치는 물론 어느 자리에서건 완벽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게 카퓌신의 미덕이다.

19세기 메종의 역사 시작된 곳
카퓌신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1854년 루이 비통은 ‘뇌브 데 카퓌 신 거리 4번지’에 첫 매장과 공방을 열었다. 카퓌신 거리는 방돔 광장, 루브르 박물관, 튀일리 정원이 인접한 파리의 중심부로 장인들의 명품 가게가 밀집해 상업이 번성했다.

당시 루이 비통은 이 거리에서 뛰어난 디자인과 견고함을 갖춘 여행용 트렁크로 명성을 누렸다. 패션 권력의 일인자였던 외제니 황후를 비롯해 배우 사라 베르나르 및 유럽 왕실 인사가 단골이었다. 카퓌신 백은 그로부터 1.5세기 후인 2013년 탄생했다. 메종이 시작한 거리를 소환해 여행 가방 제작사의 초심을 되새기는 한편, 당대 뛰어난 감각과 취향을 지녔던 여성들에 대한 헌사를 담은 것이다.

따라올 수 없는 디테일의 비밀
카퓌신 백이 가죽공예의 명작이라 불리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최상의 가죽이라 일컬어지는 ‘토뤼옹’ 때문이다. 흠집이나 상한 곳 없는 가죽만이 ‘풀 그레인(Full-grain)’ 원단이 되는데, 인위적으로 덧대거나 표면을 갈아내지 않아 내구성이 좋고 가죽 본연의 광택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토뤼옹은 여기에 태닝과 건조를 번갈아 거치는 ‘텀블링 드럼’ 공정을 거쳐 표면 색이 풍부하고 고르며, 유연한 그립감을 자랑한다.

두 번째는 루이 비통의 살아 있는 디자인 유산이라는 점이다. 카퓌신 거리에서 태어난 루이 비통의 장남, 조르주 비통은 1896년 지금의 모노그램 디자인을 고안해 낸 주인공이다. 카퓌신 백에는 ‘LV’ 금속 로고를 비롯해 여닫이형 안쪽 덮개에 모노그램의 꽃잎 장식이 박혀 있다. 덮개를 바깥으로 빼면 이 금속 장식이 드러나는 구조다. 이 밖에 가방 바닥면을 보호하는 4 개의 금색 스터드, 가방 손잡이에 달린 링, 본체에 연결하는 금속 부품도 여행 가방의 전통성을 드러낸다.


250개 공정 거치는 장인정신
카퓌신 백은 절제된 외관과 달리 내부 구조가 복잡하다. 제작 단계만 250개에 달할 정도다. 이 공정을 거쳐 가방을 조립할 수 있는 건 오직 루이 비통 아틀리에의 숙련된 장인뿐이다. 바느질로 조립을 마친 가방은 겉면이 밖으로 오게 손으로 뒤집는다. 그 다음 본체에 꽃잎 모양의 안쪽 덮개를 고정하고 가죽 손잡이를 부착한다. 이 과정에서 모노그램 꽃잎과 이니셜 금속 로고를 부착하는 데, 가방마다 개별 디자인되기 때문에 주얼리를 세팅하듯 정교한 손길을 요구한다.

박서보, 우고 론디노네 등 동시대 현대미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패션과 예술의 접점을 보여줬던 ‘아티카퓌신’ 시리즈도 이같은 장인정신에서 발현된 것 이다. 한정판인 아티카퓌신을 제외하면 지금 만나볼 수 있는 카퓌신 종류는 5 가지다. 크기순으로 카퓌신 미니·마이 카퓌신·카퓌신 BB·카퓌신 MM·카퓌신 GM이다. 이 중 2024년 출시한 마이 카퓌신 백은 다양한 색상의 가죽은 물론 체인에 달린 참을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는 맞춤형 에디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