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생기면 30%는 국민이 나누면"
'AI와 대한민국' 유튜브 대담에 파문 확산
그런 발상에 엔비디아 생겨날 리 없거니와
생기지도 않은 기업 나눌 궁리부터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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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시리즈' 14편인 '뷰 투 어 킬'에는 실리콘밸리를 침수시키려는 악당이 등장한다. 그의 시도를 저지한 제임스 본드에게 소련의 고골 장군이 다가와 훈장을 수여한다. 어리둥절한 본드는 "실리콘밸리가 수장되면 소련에게는 이득이 아니냐"라고 묻는다. 그러자 고골 장군은 씩 웃으며 "실리콘밸리가 사라지면 우리는 어디서 기술을 훔치느냐"라고 반문한다.
영화가 개봉한 1985년, 소련의 생산성 저하와 기술적 정체는 극에 달했다. 이 해에 소련의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테트리스'를 개발했다. 개발하는데 국가의 컴퓨팅 자원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모든 권리는 소련 당국에 귀속됐다. 파지노프에게는 한 푼의 보상도 돌아가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에 IBM·마이크로소프트·애플·HP 등이 부상하며 각축전을 벌인 반면, 미국과 양대 초강대국을 자처하던 소련에는 단 하나의 혁신기업도 나타나지 못했던 이유다. 소련은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혁신적 기술이 등장하면 이를 카피하고 역설계하며 그저 3년 내의 격차를 유지하는데 급급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AI와 대한민국'을 논하는 자리에서 뜻밖의 발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대표는 "인류의 역사는 생산성 향상의 역사다. 생산성 향상의 결과를 공동체가 일부나마 가지고 있었다면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라며 "인공지능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일부를 공공영역이 가지고 있으면서 국민 모두가 나누는 시대도 가능하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에 박태웅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이 "2조원을 쓰기로 했다면 2조원이 다 세금 아니냐. 당연히 세금을 써서 나온 결과물을 시민과 어떻게 나눠가질지 처음에 시작하면서 합의돼야 한다"고 하자, 이 대표는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생겼다면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 구상을 들은 박 센터장이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치자, 이 대표는 "인공지능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며 "개인이나 특정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상당 부분 공유하는 세상이 내가 꿈꾸는 기본사회"라고 뿌듯해 했다.
일단 2조원의 예산으로 무슨 AI, 어떤 R&D에 투입하려는지 몰라도 2조원의 세금을 쓴다고 해서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저절로, 쉽게 생겨나지 않는다. 기업가가 각고의 노력 끝에 혁신기업을 키워냈는데 정부가 '그동안 나랏돈으로 정부에서 이것저것 한 덕을 보지 않았느냐'고 달려들고 상생기금 등 온갖 준조세를 뜯어내는 풍토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물며 기업이 잘나간다고 30%를 '국민 모두의 몫'으로 상정해 골고루 나눠야 한다면 생산성 향상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향상은 커녕 생산성 저하로 치달았던 소련의 길이다. 이 대표가 예로 든 엔비디아부터가 배당에 인색하다. 기술기업들은 재투자에 소홀하면 경쟁에서 밀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30%씩 국민 모두와 나눈다? 망하기 전에 법인을 청산하고 100% 나눠갖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생겨날지 어떨지도 지극히 불투명한 기업이 '생겼다면'이라고 가정하고 어떻게 나눠먹을까 상상하는 모습도 헛웃음이 난다. 이 대표가 '기본사회'를 꿈꾼다는 것은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사회를 어떻게 구현해볼까 고민하다가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생긴다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에 닿는 것은 꿈과 현실의 관계가 도치된 것이다.
유력 대권주자가 모처럼 AI 전문가들과 대담을 하고 그 결과물을 유튜브를 통해 국민들 앞에 공개까지 한다니, 어떻게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생겨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줄 줄 알았다. 이 대표가 그것을 고민한다면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길로 가는 것이고, 반대로 그런 게 생겼다고 일단 가정하고 어떻게 나눠먹을까를 고민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련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 대표의 유튜브 대담을 보니 어쩌면 우리는 조만간 간첩죄 개정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나라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혁신의 결실이 당국으로 귀속되는 소련과 같은 사회에서는 엔비디아니 구글이니 애플이니 테슬라니 하는 혁신기업이 생겨날 여지가 없다. 남이 우리 기술을 훔치러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다른 나라에 기술이나 훔치러 다니게 된다면 그 때 가서는 간첩죄 개정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