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 나라와 결혼했지만, 아직도 그 문밖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나의 젊음, 나의 힘, 나의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결혼이 끝났을 때, 혹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더 이상 한국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 속에 돌아가지만 자존심은 지닌 채 돌아갑니다.”
이 말은 20년 넘게 한국에 머문 한 필리핀 출신 결혼이민자의 고백이다.
결혼 이민자의 이 같은 사연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도 보편적인 현실이다. 많은 결혼이민 여성들이 한국 사회가 외면한 침묵 속의 고통을 겪고 있다.
▲왜 떠나는가? 사랑했던 이 나라에서
그녀들은 가족을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편견과 고립 속에서도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결혼이 끝나고, 자녀가 성인이 되자 이 땅은 그녀들에게 머무를 자격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20년을 살아도, 이 나라는 내 것이 아니었어요. 모든 게 빌린 듯한 삶이었어요. 비자도, 가정도, 꿈조차도… ”
▲‘가족’이었지만, ‘시민’은 아니었다.
“많은 여성이 여전히 ‘누군가의 아내’ 혹은 ‘아이 엄마’로만 존재합니다. 그들의 감정적 욕구, 자아, 존엄성은 종종 무시됩니다. 이혼 후에는 비자 연장을 위한 조건조차 한국인 남편의 협조에 좌우됩니다.”
남편이 아이를 보지 못하게 막으면, 아무리 애원해도 출입국은 말합니다. “그건 당신 문제입니다.”라고…
반면, 한국인 아버지가 사라져도 법은 그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아이를 홀로 키우는 이주여성에게는 양육비도, 보호도, 동반자도 없습니다. 법의 이름으로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그 평등은 이주여성에게 닿지 않습니다.
▲한국은 집이었지만, 마음은 없었다.
“나는 한국 시민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더 이상 저를 원하지 않아요.”
자녀가 만 18세가 되면, 자녀 양육을 기반으로 했던 체류자격은 자동 종료됩니다. 여성은 살림, 간병, 보육의 역할로 존재했지만, 한국 사회는 그녀들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낸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한국에서는 생존했지만, 필리핀에서는 다시 살 수 있어요.”
어떤 여성은 20,000페소(한화 약 50만 원)로 필리핀에서 작은 가게, 마당, 자신의 이름을 되찾습니다. 그곳에서는 ‘외국인’이 아닌, ‘아줌마’가 아닌, 그냥 ‘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죽기 전에 돌아가고 싶어요. 도망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거예요.”
▲차별은 고통보다 느리게 죽인다.
수십 년을 살아도 ‘외국인’이라는 낙인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모국어를 쓰지 말라는 시댁, 인사조차 하지 않는 이웃.
‘돈 보고 결혼했겠지!’, ‘국적 취득이 목적이겠지.’라는 말 없는 멸시
그녀들은 여전히 문턱 바깥에 서 있습니다.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공정함을, 존엄을, 그리고 ‘진짜 집’을 원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결혼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랑과 존중으로 가득한 가정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외이지 규범은 아닙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왜 법은 이주여성에게 그렇게 엄격하고, 한국인 배우자에게는 그렇게 무기력할까요?’
이 이야기는 이주여성에 대한 ‘특혜’ 요구가 아닙니다. 그녀들도 동등한 시민으로, 부모로,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저에게 집은 줬지만, 마음은 주지 않았어요. 우리는 단지 기회 때문이 아니라,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남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아무리 바쳐도 젊음도, 충성도, 사랑도 줬는데 이 나라는 끝내 우리를 사랑해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녀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더 이상 ‘빌린 삶’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집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윤지수 김제시가족센터 필리핀 통·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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