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수급 가정’ 출신인 상현이(가명)가 마음을 둘 곳은 없었다. 아빠는 병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됐고 엄마가 하는 일만으로는 집안이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상현이는 학교 가기가 싫었다. 등교하더라도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하교 후에는 밥을 먹으러 공부방에 갔다. 어느 날 공부방 선생님이 오케스트라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오.케.스.트.라. 발음도 어려운 그걸 내가?” 태어나서 악기라고는 잡아본 적 없는 상현이는 시큰둥했지만 선생님의 성화에 등 떠밀리듯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음악 선생님은 팀파니 채를 쥐여줬다.
그렇게 만난 음악은 상현이의 인생을 바꿨다. 공고에 진학했고 밴드부에도 들었다. 학교 가는 게 즐거워졌다. 동아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짬짬이 다른 악기도 익히며 연주 실력을 늘리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음식점에 취직한 상현이는 먹고사느라 바쁘지만 퇴근 후에는 여러 동아리 오케스트라에서 트롬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또 자신을 품어줬던 ‘꿈나무 오케스트라’를 찾아 후배들의 멘토가 되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 사업 담당자들을 만나면 상현이와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을 수 있다. 취약 계층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오케스트라 사업은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를 모델로 한다. 이는 오케스트라 교육을 통해 희망과 꿈을 주고 음악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교육 운동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16년 전 예산 5억 9000만 원으로 전국 8개 지역에서 한 곳당 50~60명을 모아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전국 54곳, 수천 명 규모로 대상을 확대했다. 세종문화회관은 시 예산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꿈나무 오케스트라’를 16년째 이어오고 있다.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음악 교육은 ‘악기 배우기’가 아니다. ‘음악을 통한 성장’이다. 가정의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리던 아이들도 ‘내가 틀리면 친구들의 음악을 망친다’는 책임감 때문에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연습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을 보며 성취감과 자존감을 키운다.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낸 경험은 연대와 배려를 가르쳐준다. 특히 지역을 거점으로 한 예술교육 사업은 교육을 넘어 지역의 예술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부도 음악에 그치지 않고 무용·연극·미술 등으로 취약 계층 아동·청소년을 위한 예술교육을 확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인 관심은 반갑다. 취약 계층 대상 ‘꿈의 예술단’ 사업에 대해 최휘영 장관과 실무진에 꼼꼼히 질문을 던지며 “더 많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이 가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국가 예산에 지자체 의무 매칭을 늘리면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지역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즉석에서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꿈의 예술단’ 사업은 정부가 6년간 연간 비용의 50~90%를 지원한 뒤 자립을 목표로 설계돼 있다. 상당수는 6년의 지원 기간을 넘겨 운영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인력과 재정 부족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교육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악 교육도 마찬가지다. 악기를 익히는 데 몇 해, 음악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데 또 몇 해가 걸린다. 행정의 시간표와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다르다. 예술교육의 관건은 결국 끈기 있는 지원이다. 지자체와 커뮤니티·기업의 관심과 참여 없이 중앙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해서는 장기적인 유지가 어렵다. 16년째 명맥을 이어온 세종문화회관의 ‘꿈나무 오케스트라’는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향의 공간 및 인적 지원을 바탕으로 서울시 예산과 토요타자동차·CEO합창단 등 기업과 시민의 기부가 더해졌기에 가능했다.
각 지역의 공연 시설 인프라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부산콘서트홀에 이어 화성과 평택에도 각각 수천억 원을 들인 근사한 콘서트홀이 들어선다. 정명훈·임윤찬·조성진과 같은 스타 음악가를 무대에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든든한 기지가 돼주지 못하는 공연 시설은 ‘화려한 성(城)’에 그친다. 정부와 지자체, 지역의 커뮤니티가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조직적으로 지원할 때 한국의 ‘꿈의 오케스트라’가 제2의 엘시스테마로 성공할 수 있다. 더 많은 상현이의 후배들이 나올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현장] "'어린 왕자'와 함께하는 독서융합 과학 교육"…서울교육청, AI 시대 '독서 처방'](https://img.newspim.com/news/2025/12/18/251218143328076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