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시위 왜 해?” 물음에···청소년들은 ‘무턱대고’ 거리로 나섰다

2025-12-18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인근 한 편의점 앞을 정수민씨(19)와 이은빈양(17)이 기웃거렸다. 두 사람의 시선은 가게 앞 ‘문턱’에 머물렀다. “여기 어때?” 턱을 유심히 살펴보던 은빈양이 묻자 수민씨가 “출동!”하고 외쳤다. ‘경사로 설치해드립니다’라고 쓰인 전단지를 꼭 쥔 수민씨가 편의점 문을 힘차게 당겼다.

휠체어·유아차 등의 진입을 막는 문턱을 없애기 위해 청소년들이 나섰다. ‘무턱대고’란 이름으로 턱이 있는 상점 등에 경사로를 설치해온 이들은 “작은 관심으로도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성북구에 있는 대안교육기관 ‘거꾸로캠퍼스’에서 만났다. 거꾸로캠퍼스는 학생들이 스스로 사회문제를 탐색해 직접 해결하는 팀 프로젝트를 최소 2년간 진행한다. 수민씨와 은빈양이 속한 ‘무턱대고’팀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다섯 명이 시작해 현재는 기획을 맡은 박서현양(17)까지 세 명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청소년이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여러 아이디어를 전전하던 어느 날 한 팀원이 ‘장애인 이동권’을 제안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이어지던 때였다. 다른 팀원이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토론 끝에 학생들은 직접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가보기로 했다. 첫 주자로 나선 친구가 평소 10여분에 오가던 길을 1시간 만에 다녀와 말했다. “너무 힘들어. 이거 진짜 심각한 문제야.” ‘해결’을 위해선 ‘공감’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학생들은 그날부터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도시엔 휠체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많았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열차와 플랫폼 사이 틈, 지하철역의 계단 모두 바꾸고 싶었지만 청소년이 해결하기엔 크고 복잡한 문제였다. “그럼 작은 것부터 해결하자!” 학생들은 작은 상점들에 있는 ‘문턱’에 집중했다. 점주들을 설득해 경사로를 만들기로 했다. ‘무턱대고’ 거리에 나가 ‘무(無)턱 세상’을 만드는 무턱대고 팀이 탄생했다.

10일 두 사람은 고려대 인근 편의점·식당·동물병원 등 곳곳을 돌아다니며 턱을 관찰했다. 가게 입구가 좁거나 턱이 도로와 가까운 경우 등 기준에 맞지 않으면 경사로 설치 자체가 어려웠다. 어렵사리 맞는 가게를 찾아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이날도 찾아간 가게 4곳에서 경사로 설치 제안을 거부했다. “성북장애인복지관에서 무료로 설치해드려요”라고 설득해도 “여긴 장애인 안 와요”, “필요 없어요”하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9월부터 방문한 100여개 가게 중 경사로 설치가 확정된 곳은 5곳뿐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법을 보면 경사로 설치 의무는 과거 바닥면적 300㎡ 이상 시설에 한정됐다가 2022년 개정으로 바닥면적 50㎡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새로 짓거나 증·개축하는 소규모 점포도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 다만 이는 신축·증축 건물에 적용돼 기존 건물은 자발적 설치나 지자체 지원사업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경사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 사업 홍보가 충분히 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시민들의 관심이 변화의 첫 번째 단계”라고 입을 모았다. 수없이 거절을 당해도 누군가 관심을 보내주면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수민씨가 말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가도 다시 설득하니 ‘해보겠다’고 답한 분도 있었고, ‘이건 왜 하는 거예요?’라며 관심을 보인 분도 있었어요. 이런 분들 덕분에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잖아요. 처음엔 두렵지만 무턱대고 시작하면 쉬워지는 일이 많아요.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해결 못 할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이날 편의점에 들어간 수민씨는 점주와 함께 나왔다. 문턱을 살펴보던 점주가 설명을 듣더니 “네, 설치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얼떨떨한 얼굴의 수민씨가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성공했어!”라고 말한 뒤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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