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출의 한과 반역의 땅 기운, 홍길동전으로 이어져

2025-08-11

원주 부론면과 손곡 이달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건 누구나 다 알아도 그의 오리지널은 아니다. 허균의 가정교사 손곡 이달(李達·1539~1612)이 홍길동의 활약상을 전해줘 허균이 이를 토대로 소설로 완성시켰다. 홍길동은 연산군 때 활약한 인물로 임꺽정·장길산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으로 꼽힌다. 그런데 여느 도둑과 달라 옥관자와 붉은 띠를 두른 당상관 차림으로 관아에 쳐들어가 부정한 벼슬아치와 못된 부자의 집만 골라서 털어 백성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처음에는 충청도 충주 일대에서 활약했는데 활동 범위를 점차 전국으로 넓혀 당시 조선에서 홍길동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벼슬길 막혀 평생 한 품었던 이달

제자 허균에게 홍길동 얘기 들려줘

손곡리에서 반역자 이괄도 출생

부론면은 물산 풍부해 논쟁 활발

허균, 장자의 ‘무용지용’에 빗대

쓸모없어서 장수했던 스승 기려

허균·허난설헌의 문재, 이달이 꽃 피워

그런데 이달이 누구였기에 허균의 가정교사가 되고, 허균은 또 어째서 그의 영향을 받아 『홍길동전』을 쓰게 되었을까? 이달은 고려말과 조선 초에 걸친 문장가 쌍매당 이첨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모친이 관기라서 서출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성당(盛唐)의 시를 마스터한 조선의 삼당(三唐) 시인 중 한 사람으로 뛰어난 문재를 자랑했다. 그런데 등용은커녕 족보도 없이 평생 서출의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이 강릉 초당에 그를 초빙해서 허균과 허난설헌에게 시를 가르치게 했으니 이들 남매의 문재도 이달에 의해 피어난 셈이다.

이달은 서출 신분이라선지 고관의 서자로 알려진 홍길동에 매료돼 허균에게 홍길동 얘기를 전해주고, 허균도 스승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홍길동전』을 썼다고 본다. 조선에선 왕은 서출이어도 왕위에 오를 수 있지만, 양반 아들은 서출이면 벼슬길이 봉쇄되었다. 이런 식 차별은 당시 중국과 일본에도 없던 일인데 이방원이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과의 정치 투쟁에서 승리해 그를 서출 신분이라고 깎아내리자 그 후 서출은 부당하게 차별받았다. 이달은 자신의 이런 처지를 이슬 젖은 학에 비유했다.

학이 먼 하늘을 외롭게 바라보는데

밤이 차가운지 다리 하나를 들고 서 있다.

대숲도 가을바람에 괴로워하는 밤이지만

그의 온몸은 이슬로 가득 젖었다.

-‘화학(畵鶴)’

이달은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서 태어나 호가 손곡(蓀谷)이다. 손곡은 창포 계곡이란 뜻인데 손곡리의 원래 이름은 손위실이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손위(遜位), 즉 왕위를 내주고 유배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해군의 모친 공빈 김씨 집안도 여기서 대대로 살아왔는데 조선 중기의 유명한 예언가 남사고가 “원주 남서쪽에 왕기가 서려 있다”라고 말한 게 사실이 돼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인조반정으로 그가 역군으로 몰려서 물러났으니 그의 꿈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또 궁예가 왕건에게 결정적으로 패해 미륵 세상을 일으키겠다는 포부가 꺾인 곳도 이 부근이다.

손곡리에는 손곡 말고도 알산골·능골·은골·어재골 등 골짜기가 많은데 저마다의 신화를 지닌다. 알산골에는 인조반정의 일등공신임에도 인조에 맞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효수된 이괄 탄생의 설화가 있고, 능골에는 이괄의 반란군을 무너뜨린 임경업 장군의 설화도 있다. 그는 청군을 벌벌 떨게 한 용감한 무장이었는데 정치꾼 농간에 버림을 받아 만리타향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손곡리 일대는 비극을 잉태한 곳이라 여겨지는데 여기를 조금만 벗어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한양에서 멀고 평야 넓은 부론

손곡리를 품는 부론면은 그 이름에서 보듯 어떤 담론도 논쟁으로 비화되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곳이다. 부론(富論)은 그 발음으로 외국어가 아닌가 착각하는데 ‘논쟁(論)’이 ‘풍부해서(富)’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 조선판 백가쟁명의 터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터는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상대방 주장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들어설 수 없다. 그래서 홍길동과 같은 불온한 얘기도 이곳 공론장에 당당히 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선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리학 일변도의 사상만 고집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부론면은 매우 특이한 곳이다.

부론면에서 논쟁이 어째서 활발할 수 있었을까? 일단 교통이 발달해서다. 수로는 조선 시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는데 남한강은 한양과 영남을 잇는 유일한 수로라서 특히나 중요했다. 더구나 부론면은 남한강 중간쯤에 있는 강원도임에도 강 건너가 경기도이고, 충청도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 여기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다양한 얘기들이 넘쳐났다. 물론 이런 사실만 갖고 논쟁이 풍부했다는 부론면의 성격을 다 말할 순 없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건 한양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있었기 때문 아닐까?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곳에 퇴촌(退村), 즉 ‘선비들이 물러나서 사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한양에서 하루면 도착해 논쟁이 자연 제한될 수밖에 없다. 조정의 부름을 받으면 당장에 달려갈 사대부들이 한양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서다. 이에 반해 부론면은 한양과 적당한 거리를 뒀기에 자기들의 이해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다. 부론면 바로 옆에 문인들의 주막인 문막(文幕)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본다.

그렇지만 교통이 아무리 발달하고 한양과 아무리 적당한 거리에 있어도 논쟁이 저절로 활발해질 순 없다. 물적 토대를 갖추지 못하면 논쟁은 불평분자의 쓸데없는 소리로 치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부론면은 남한강 수로로 상업이 크게 발달한 데다 넓은 평야로 농업 기반도 잘 갖추었다. 이곳에 소재하는 법천사와 거돈사의 존재가 부론면의 물적 토대가 얼마나 튼튼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지금은 빈터로 남아있어도 절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이런 큰 절을 유지하려면 이 지역의 물적 토대가 튼튼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달이 지금까지 추모 되는 건 허균이 스승을 그리면서 쓴 『손곡산인전』 때문이라고 본다. 산인(散人)은 『장자』에 나오는 말로 ‘쓸모없는 사람’을 뜻한다. 장자에 따르면 사람은 쓸모가 없어야 오히려 생명을 잘 보존할 수 있다. 잘 생긴 나무인 문목(文木)은 그 쓸모로 중도에 잘리지만, 못생긴 나무인 산목(散木)은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잘리지 않는다.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없음의 쓸모’다. 허균이 스승을 쓸모없는 사람에 비유한 것도 이런 취지라고 본다.

장자의 바람대로 삶을 즐겨

우리는 쓸모 있음의 쓸모(有用之用)만을 중시해 어떻게 사는 게 정말로 즐거운지를 고민하지 않고서 부와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한다. 장자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놀 유(遊)’를 자신의 핵심 철학 개념으로 삼았다. 공자는 ‘어질 인(仁)’으로 유가 철학을 압축해서 설명했는데 사람들이 다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다. 서양철학은 ‘진리란 무엇인가’를 놓고 2000년을 고민해 왔는데 이런 식의 태도는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켜 우리의 물질적 삶을 향상케 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물질적 삶이 향상돼도 그와 비례해서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달은 시를 읊으면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벗어나려고 애썼기에 장자 바람대로 삶을 즐기고서 갔다. 그가 여느 시인처럼 쓸모 있음의 쓸모를 추구해 힘 있거나 돈 있는 사람에게 재능을 뽐냈다면 자유로운 영혼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으리라. 흥미로운 건 이달의 후예가 아직도 부론면에 건재한다는 점이다. 언론인 곽병찬이 이곳에 왔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호프집의 화장실 낙서가 이를 잘 말해주는데 이달의 마음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누구를 미워해도 원망하지 말자.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도

적게 가졌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 세상살이.

재물 부자이면 걱정이 한 짐이요,

마음 부자이면 행복이 한 짐인 것을.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마음 닦은 것과 복 지은 것뿐이라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날로 많지 않은데

남은 세월 얼마나 된다고 가슴 아파하면서 살지 말자.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거겠지 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가자.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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