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테이너의 전면 등장 시대
정치 선동·경시 초래 비난 불구
사회적 이슈 인식 제고 역할 커
편견 없이 바라볼 사회 됐으면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결정에 이목이 쏠렸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2억8000만명에 달하는 최고의 인기 가수인 그가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비록 스위프트가 지지를 선언한 해리스가 낙선했지만 미 대선에서 그의 엄청난 영향력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연예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반면 한국의 대중문화인들의 경우 정치적 의사표현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었다. 대중들도 특별한 입장 표명을 바라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행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비상계엄이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에 대중문화계 인사들도 그냥 조용히 있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세 가수가 있다. 먼저 엄청난 팬덤을 보유한 임영웅이다. 그는 여의도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국회에서는 첫 탄핵 표결이 진행되는 등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반려견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과 사진을 올려 빈축을 샀다. 특히 “이 시국에 뭐 하냐”고 비판하는 한 누리꾼에게 임영웅은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고 답해 논란을 일으켰다.
두 번째 논란의 대상은 이승환이다. 그는 탄핵 찬성 집회에 무료 콘서트를 여는 등 자신의 정치색을 뚜렷이 드러냈다. 이것이 논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일을 키운 건 예정된 콘서트 장소인 문화회관의 대관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경북 구미시장이었다. ‘정치적 선동 및 오해 등의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 날인을 거절한 것이 이유였다. 구미시장은 정치적 언행이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승환의 대척점에 있는 대표 연예인으로 김흥국이 꼽힌다. 그는 한남동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윤 대통령만큼 잘한 대통령이 어디 있냐”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박정훈 대령의 무죄 선고 이후 해병대 선후배들의 비난 댓글에 “너나 잘하라”고 대응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다.
먼저 임영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연예인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세상이 뒤집힐 만한 정치적 사건을 모른 체한다는 것은 공감의식의 부족으로밖에 이해될 수 없다. 세상에 대한 공감의식이 없어 보이는 그가 팬들을 사랑한다고 해왔던 그동안의 언행이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중립이나 무대응은 이해할 수 있지만 방관과 무시는 이해해주기 어렵다.
이승환과 김흥국의 정치적 견해를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이승환 콘서트를 취소한 구미시장의 행태는 일부 정치인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몰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콘서트에서 정치적 발언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는 이승환 콘서트가 폭력 사태를 선동하는 집회라는 인식에서 나온다. 참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생각뿐이다.
김흥국에 대해서는 그의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그를 무시하는 시선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가 이전까지 보여준 언행에서 철학적 깊이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또한 그가 집회에서 하는 주장도 합리적 근거 제시보다는 감정적 발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김흥국만 하는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국회의원이나 지식인도 적지 않다. 김흥국을 비난하는 많은 사람에게 이런 편견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정치적 활동을 하는 연예인 ‘폴리테이너’가 전면에 등장하게 된 시대다. 정치를 가볍게 만들거나 선동으로 만든다는 비난도 있지만 폴리테이너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각성과 참여를 촉진하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폴리테이너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한편으로 대선 때마다 지지 후보를 밝히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두고 폴리테이너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런 인식이 가능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송용준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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