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는 건 쉽지만 다시 세우는 건 어렵다.” 최근에 자꾸 곱씹는 말이다. 미국에선 21세기 내내 제조업 일자리가 화두였다. 민주당 바이든 정권 4년간 국내 제조업 투자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법 등에 의해 촉진돼 2024년에는 분기당 1500억달러까지 올라갔다. 오바마 정권 1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제조업 투자가 주춤했지만, 2기에는 4년간 투자가 늘어났다. 고용 관점에서도 오바마 정권 8년간 100만명, 바이든 정권 4년간 70만명이 늘어났다. 투자와 고용 실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러스트 벨트’로 대표되는 산업도시의 주민들은 ‘정권심판론’을 지지했고 도널드 트럼프를 뽑았다. 고용의 질은 인플레이션이나 산업전환이 주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했다.
‘신뢰’ 부쉈다 복원하는 일 쉽지 않아
최근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 역시 1기부터 꾸준히 관세를 무기로 해외의 기업들에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 압박하지만, 공장을 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공급망 기업들은 대다수 해외에 있고, 미국에 공장을 짓더라도 ‘원천기술’은 본국에 귀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동화와 로봇, 인공지능(AI) 생산방식을 채택한 공장에서 생산직 일자리의 질이 높기는 어렵다. 게다가 제조업을 경시하면서 보내온 20년 넘는 세월 동안 생산직에 필요한 기술교육부터 작업장 문화가 사라졌다. 다양한 플랫폼·서비스 노동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시절에 ‘지루하고 힘든’ 공장일에 몰입하며 숙련을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DOGE(정부효율부)의 작업도 예시가 되리라. 20대 초반 해커들이 100년 넘게 쌓인 정부의 공공 데이터를 파괴하고, DOGE는 핵무기를 관리하는 담당자든, 공공보건 담당자든 손쉽게 아무 부서의 공무원 수만명을 해고하고 있다. 머스크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발견하면 컴퓨터 버그처럼 ‘고치면’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굴러갈 수 있는 정당성은 정책 방향과 국가 행정에 대한 ‘신뢰’일 텐데, 이를 부쉈다 복원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아차’ 싶어서 복원하려면 데이터를 축적하고 인력을 양성했던 시간만큼의 투자는 물론이고 복원 불가능한 요소들도 끝없이 쏟아질 것이다.
트럼프는 관세전쟁을 시작하면서 관세를 질렀다가 유보하기를 반복한다. 미국 증시는 처음에는 관세 선포에 ‘하락’했다가 유보에 ‘회복’하는 국면을 2월 중에 보여줬는데,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불확실성’ 때문에 본격적인 조정을 시작했다. 유럽, 중국, 아시아로 자금들이 차근차근 이전하고 있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임계치’를 넘겨버리니 시장이 제어되지 않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윤의 3년’ 논란 정책 복원도 미지수
윤석열 정부 3년간 충분한 이해당사자 참여와 숙의 없이 대통령의 격노와 부처의 모르쇠로 진행된 정책들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2026년 의대 모집 인원을 기존 증원분을 백지화하고 원상복귀하겠다고 밝혔다. 1년 내내 의대생들이 휴학하고 전공의들이 사직했으나 정부는 입장의 ‘일점일획’도 바꾸지 않았다. 응급실부터 중환자실까지 힘에 부치는 대학병원과 공공의료체계는 망가지고 있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폐지 등을 제안하며 쉽게 돌아오지 않을 기세다. 내란 사태로 ‘처단’할 대상이었던 의료진과 감정적 간극을 좁히는 일도 쉽지 않다. 풀어야 했던 의대증원, 수가조정,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논의를 앞으로 누가 꺼낼 수 있을까.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도 쉽게 복원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수많은 기초 연구가 중단되면서 기존 연구인력이 계약 해지되고, 대학원생이 입학을 포기하고, 남아 있는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은 연구비를 삭감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기술창업 역시 쪼그라들었다. 과학기술자들에게는 ‘R&D 카르텔’이라는 오명도 씌웠다. 중국의 담대한 R&D 투자는 ‘딥시크 쇼크’를 안겼는데, 몇년의 실기로 한국은 ‘IT 강국’이라는 칭호도 내려놓아야 할 지경이다. 다시 투자를 늘린다고 바로 복원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은 어떻게 ‘망가진 체제’를 회복할지 고민을 시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불확실성을 초래한 내란 사태부터 끝내야 경제와 보건의료체제를 복원할 생산적 논의를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 다음 글부턴 회복을 위한 이야기를 더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길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