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 운동과 인공지능

2025-03-10

1811년 3월 11일, 영국 노팅엄셔의 아놀드라는 마을 외곽에 건장한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직업은 방직공. 구형 편직기를 이용해 옷감을 짜는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신형 편직기가 ‘노동자에게 가장 해로운 양말 제조업자’의 것이라 지목했다. 그날 총 63대의 신형 편직기가 파괴되었다. 신형 편직기가 확산되면 구형 편직기에 눈과 손이 최적화된 기존 방직공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러다이트 운동이 시작됐다.

최초의 기계 파괴 운동은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해 11월 10일, 존 웨슬리(John Westley)가 벌웰(Bulwell)에서 시위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러다이트 운동은 급속도로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1816년 12월 28일 양말 제조업자와 방적공 사이에 평균 임금 인상을 보장하는 협상이 체결될 때까지 17명에서 25명의 러다이트 운동가가 처형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위대의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도 최소 10여 명에 달한다.

러다이트 운동은 네드 러드(Ned Ludd)의 지도 하에 벌어진 반(反) 산업화 운동으로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다. 영국의 전설적인 의적 로빈 후드가 실존 인물이 아니듯 네드 러드 역시 마찬가지다. 산업혁명과 그로 인한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대중이 만들어낸 가상의 영웅인 셈이다.

214년 전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의 출현과 확산을 목격하고 있다. 마치 산업혁명이 그랬듯 AI 역시 산업 영역 전반에서 생산성을 늘릴 것이다. 산업 구조의 변화는 일시적 실업과 혼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 주도로 ‘한국형 엔비디아’를 만들어 세금 대신 배당금을 받자는 몽상에 빠질 때가 아니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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