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장애를 ‘극복’ 또는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장애를 지닌 인물이 가족과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해 나가는가에 주목한 연극 한 편이 화제다.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이 공동 제작해 지난해 5월 작품 개발 쇼케이스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 개발과정을 선보였던 연극 '젤리피쉬'가, 내달 18일부터 4월 13일까지 모두예술극장에서 초연 무대로 관객들을 만난다.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Ben Weatherill)의 원작을 국내 무대로 옮긴 이 작품은, 다운증후군이 있는 27세 주인공 ‘켈리’의 사랑과 자립 과정을 깊이 있고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2018년 영국 부시 시어터(Bush Theatre) 초연 이후 내셔널 시어터(National Theatre)로 옮겨 연이어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2023년에는 호주 뉴 시어터(New Theatre)에서 공연되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모두예술극장에서 작품개발 쇼케이스의 형태로 첫 선을 보이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인상적인 무대”라는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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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장애인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관계가 빚어내는 갈등과 화해, 성장의 순간을 유머와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내어, 사랑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솔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독특한 시선은 해외 공연계와 언론으로부터 “정서적 공감대와 동시에 도전적인 화두를 제시하는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젤리피쉬'는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실천하는 태도를 지향한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켈리와 해변가 아케이드 직원 닐의 사랑, 또 이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켈리의 어머니 아그네스 등 주요 인물 간의 관계는, 이들의 배경과 바람이 서로 충돌하고 다시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생생히 드러난다. 원작자인 벤 웨더릴은 “무대에서 장애인이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모든 인물이 각자의 서사를 통해 함께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고 언급했으며, 실제로 작품은 “한 인간의 일상과 내면적 갈망을 그대로 조명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지난해 작품개발 쇼케이스는 단순히 결과물만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장애·비장애 예술인이 함께 참여하는 제작 과정을 공개해 주목받았다. 감각 워크숍, 인지학습 훈련을 비롯해 안전하고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셀프케어 매뉴얼’ 작성 등, 새로운 공연 메커니즘을 세심하게 구축해나가는 모습을 실연 형태로 관객과 공유했다.
이러한 시도는 장애예술의 저변 확대와 사회적 가치 확산을 지향하는 모두예술극장의 취지와도 맞닿아, 장애배우와 비장애 예술인이 함께하는 통합적 연극 제작 방법론을 구체화한 첫 발걸음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김형희 이사장은 “'젤리피쉬'는 모두예술극장이 장애가 있는 배우와 함께 실제적인 연극 방법론을 찾아가는 마중물 격이 되는 제작공연 이었으며, 장애인의 사랑과 임신, 출산 등 실질적인 문제의식을 극화한 공연”이라며, “올해 연극 '젤리피쉬'가 모두예술극장의 대표적인 콘텐츠로써 더욱 많은 관객들을 만나 위로와 공감을 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동제작사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의 석재원 대표는 “다양한 시도들로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2024 <'리피쉬' 작품개발 쇼케이스’에 이어 올해는 어떤 형태의 공연을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을 지 프로덕션 참여자 모두가 기대하면서 또 한번의 시도를 하고 있다”며, “깊이를 더한 무대를 통해 더 많은 관객들과 켈리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이번 초연에서는 지난해 쇼케이스에 참여한 핵심 출연진이 다시 의기투합한다. 무용수 출신으로 특유의 활기와 섬세함을 겸비한 배우 백지윤이 ‘켈리’ 역을 맡아, 한층 깊어진 해석과 에너지로 무대를 이끌어갈 예정이다. ‘아그네스’로 호평받았던 정수영은 딸을 보살피면서도 스스로의 불안과 갈등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복잡한 감정을 밀도 있게 표현하고, 다정하면서도 속이 깊은 ‘닐’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김바다는 새로운 호흡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재발견할 전망이다. 감초 역할을 해낸 ‘도미닉’의 김범진은 쇼케이스에서 보여준 솔직하고 때론 엉뚱한 매력을 유지하면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새롭게 합류한 이휘종도 특유의 섬세한 감정 연기로 또 다른 차원의 ‘닐’을 선보여, 한층 다양해진 캐릭터 해석을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