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네 시즌 간 4승20패로 철저히 밀렸던 ‘천적’이었는데, 올 시즌 4전 4승이다.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이 대한항공을 또 한 번 누르고 파죽의 15연승을 달리며 챔피언결정전 직행을 일찌감치 확정짓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현대캐피탈은 29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남자부 4라운드 대한항공과의 원정경기에서 레오-허수봉으로 이어지는 ‘최강 쌍포’의 화력을 앞세워 세트 스코어 3-1(20-25 25-23 25-23 25-22)으로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 11월23일 우리카드전 패배(0-3) 이후 현대캐피탈은 15경기를 내리 이기는 ‘무적행진’을 이어갔다. 2위 대한항공과의 맞대결에서 오롯이 승점 3을 쌓으며 승점 6의 효과를 낸 현대캐피탈은 승점 64(22승2패)로 2위 대한항공(승점 47, 15승9패)와의 승점 차를 17로 벌렸다. 5,6라운드 맞대결에서 대한항공이 모두 승리해 승점 6을 챙기더라도 승점 차가 10 이상 나게 된다. 최강 전력을 구축해 다른 팀들에게 좀처럼 질 것 같지 않은 현대캐피탈의 현재 페이스를 감안하면 사실상 이날 승리로 챔피언결정전을 확정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현대캐피탈의 15연승은 김호철 감독이 팀을 지휘하던 시절인 2005~2006시즌 이후 또 한 번 이뤄낸 쾌거다. 15연승을 거뒀던 2005~2006시즌에 현대캐피탈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남자부 역대 최다연승 기록도 현대캐피탈이 보유하고 있다. 최태웅 감독이 처음 부임했던 2015~2016시즌에 후반기 18경기를 모두 이기며 18연승의 대기록을 작성한 바 있다. 이제는 18연승을 넘어서는 게 목표가 된 현대캐피탈이다.
2020~2021시즌부터 2023~2024시즌까지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모두 집어삼키는 통합우승 4연패를 달성한 대한항공. 올 시즌 목표는 통합우승 5연패지만, 그 전제조건인 정규리그 1위가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우승을 노려보는 게 현실적인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패하면 정규리그 1위 가능성이 더욱 작아지는 대한항공은 1세트부터 현대캐피탈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1세트 10점을 넘길 때까지 현대캐피탈의 토종 에이스 허수봉에게만 목적타 서브를 몰아넣으며 그의 공격리듬까지 흔드는 전략이 주효했다. 현대캐피탈의 1세트 리시브 효율은 11.11%까지 떨어졌고, 흔들린 리시브에 의해 오픈 공격을 강요당하면서 블로킹을 4개나 허용하고 말았다. 여기에 대한항공의 베테랑 세터 한선수도 요스바니의 공격 컨디션이 여의치 않자 정지석-정한용으로 이어지는 아웃사이드 히터들에게 공격을 더 시키는 볼 배분으로 현대캐피탈 블로커들을 흔들면서 1세트를 25-20으로 따냈다.
이대로 물러날 현대캐피탈이 아니었다. 2세트 들어 주전 라인업을 바꿨다. 1세트 부진했던 아포짓 신펑(중국)을 웜업존으로 불러들이고 공수 밸런스가 좋은 아웃사이드 히터 전광인을 레오의 대각에 세웠다. 1세트에는 아웃사이드 히터로 나섰던 허수봉을 아포짓으로 돌려 리시브 부담을 덜고 공격에 집중하게 하는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이러한 전술 변화는 적중했다. 대한항공에겐 운도 따르지 않았다. 23-24로 뒤진 1점차 상황에서 요스바니의 서브가 네트를 맞고 떨어졌지만, 코트 밖이었다. 코트 안에 떨어졌다면 듀스로 승부를 끌고 갈 수 있었다. 이날 승부의 분수령이 된 3세트. 여전히 현대캐피탈의 우세 속에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허수봉과 레오의 쌍포가 맹위를 떨치면서 세트 중후반까지 21-16까지 벌리며 무난하게 가져가는 듯 했다. 그러나 이대로 패할 수 없다는 대한항공의 절박이 승부를 다시 팽팽한 접전으로 만들어냈다. 16-21에서 정지석의 연속 서브 4개로 현대캐피탈의 리시브를 흔든 뒤 요스바니의 오픈 성공, 정태준의 속공 범실, 이준의 퀵오픈 성공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이어 김규민이 레오의 오픈 공격을 막아내고 이준의 퀵오픈까지 터져나오며 22-22 동점을 만들어냈다.
승부의 여신은 이번에도 현대캐피탈의 편이었다. 진지위의 서브 범실에 이어 요스바니의 오픈마저 아웃되며 24-22, 현대캐피탈의 세트 포인트가 됐다. 레오의 서브 범실에 이어 요스바니의 서브가 현대캐피탈의 리시브를 흔들었지만, 허수봉이 결정적인 후위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승부를 듀스로 끌고가지 않고 25-23으로 끝냈다.
거듭된 접전에서 현대캐피탈이 내리 두 세트를 따내면서 4세트도 현대캐피탈의 우세가 계속 됐다. 19-19에서 레오의 오픈 성공과 황승빈의 블로킹으로 21-19로 달아났고, 24-22 매치포인트에서 레오의 파이프(중앙 후위공격)이 대한항공 코트에 꽂히면서 승부가 끝이 났다.
레오가 양팀 통틀어 최다인 23점을 몰아쳤고, 허수봉이 16점으로 뒤를 든든히 받쳤다. 2세트부터 선발출장해 팀의 공수 밸런스를 잡아준 전광인이 알토란 같은 8점을 올렸다. 대한항공은 요스바니(17점), 정한용(14점), 김규민(10점), 정지석(10점) 등 주전 네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고, 블로킹 12-7, 서브득점 5-4 우세를 보였지만 승부처마다 고비를 넘지 못하고 현대캐피탈전 4전 4패를 당하고 말았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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