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곳에서 비싼 보상금을 받기 위해 매각을 거부하고 버티는 것을 알박기라고 한다. ‘알을 땅에 박아놓고 황금알로 바뀌길 기다린다’는 의미다. 사전에선 개발 예정지역의 알짜배기 땅을 미리 조금 사놓고 주변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땅값을 많이 불러 개발을 방해하며 개발업자로부터 많은 돈을 뜯어내려는 행위로 정의된다.
알박기는 정부의 도시계획지역이나 건설업체의 재개발ㆍ재건축 지역 등에서 흔히 발생한다.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생긴 말 중 하나다. 비슷한 행태를 꼬집는 영미권의 ‘네일 하우스’(Nail House)나 중국의 ‘못집’(釘子戶ㆍ딩쯔후)을 원용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알박기는 부동산 신조어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비유적 표현으로 두루 쓰인다. 스포츠계에선 뛰어난 재능을 갖춘 특급 유망주에 대한 권리를 이면계약 등을 통해 미리 확보하는 행위를 뜻한다.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한 뒤 진지를 구축하는 군사용어로도 통용된다.
특정 장소에서의 집회를 막기 위해 먼저 경찰에 신청해 다른 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하는 이름뿐인 알박기 집회도 있다. 정권 교체 시기에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 등으로 얽힌 특정 인물을 임기제 고위 공직자나 공기업 등의 요직에 앉히는 것을 ‘알박기 인사’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알박기 인사’는 이른바 낙하산ㆍ회전문ㆍ코드 인사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형태의 ‘알박기 인사’는 정권 말이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고질병이다. 역대 정권 모두 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정권 말 구습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빚어진 권력 공백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조기 대선에 따른 새 정부가 오는 6월 출범함에도 ‘알박기 인사’가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12ㆍ3 비상계엄 이후 최근까지 공시된 공공기관 임원 모집 공고는 100건을 넘는다.
▲요즘 정치권 안팎이 ‘알박기 인사’ 논란으로 시끄럽다. 그중 최고의 정점은 대통령 권한 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8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두 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전격적으로 지명한 일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고유 권한에 해당하는 대통령 몫의 헌법 인사권을 행사한 건 극히 드문 사례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나올까. 헌재의 판단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