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대전에서 열린 플레이오프(PO) 1차전, 한화 코디 폰세와 삼성 구자욱 사이 ‘피치 클록’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구자욱은 폰세가 지나치게 시간을 끈다고 항의했고, 폰세는 구자욱이 이미 2차례 타임 기회를 다 썼는데 다시 타임을 불렀다고 맞받았다. 피치 클록 이슈는 21일 대구 3차전에서 다시 불거졌다. 삼성 강민호가 제한 시간 안에 타격 준비를 마치지 않아서 자동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고, 결국 ‘2구 삼진’으로 물러났다. 사흘 사이 피치 클록 촌극만 2차례 나왔다.
KBO리그는 올해 피치 클록을 정식 도입했다. 투수는 주자가 없을 때 20초, 있을 때 2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 시간을 넘기면 자동으로 볼이 선언된다. 타자는 제한 시간 8초 전까지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21일 3차전 강민호처럼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다. KBO리그는 정규시즌 개막 직전인 지난 3월 세부 규정을 추가했다. 투수가 피치 클록 잔여 시간을 이용해 고의로 경기를 지연시킨다고 심판이 판단할 경우 주의 또는 경고 조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폰세는 1차전 이후 이 같은 세부 규정에 대해 ‘몰랐다’고 하지만 납득하기는 어렵다. 이미 7개월 전에 규정이 발표됐다. 시범경기부터 시작해 시즌 내내 경기 지연과 관련해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선수가 다름 아닌 폰세 본인이기도 했다.
폰세의 상식 밖 항변과 별개로 심판의 ‘개입’을 폭넓게 허용한 세부 규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20초, 25초로 기준을 일단 정했다면 그 시간을 충분히 쓰는 것 또한 투수의 권리인데 심판이 개입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현행 피치 클록 기준 자체가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경우 주자가 없을 때 15초, 있을 때 18초다. KBO리그와 비교해 5초, 7초가 더 짧다. 여기에 투수 견제도 타석당 2회로 제한된다. 3번째 견제에서 주자를 잡아내지 못하면 보크가 선언된다.

한국은 제한 시간도 더 길고, 견제 제한도 없다. 투구판에서 발만 떼면 피치 클록 제한 시간이 초기화된다. 투수가 마음만 먹으면 피치 클록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타자는 피치 클록 도입 이후 타석당 타임 신청이 2회로 제한됐다. 3번째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벗어나면 스트라이크가 부과된다. 피치 클록 도입 당시만 해도 투수한테 부담이 될 거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오히려 타자가 더 불리해진 측면 또한 없지 않다. 시즌 개막 직전 세부규정을 급하게 추가하면서 심판 개입을 허용한 것도 결국 ‘반쪽짜리’ 피치 클록의 한계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KBO도 기준 강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내년 시즌은 지금보다 제한 시간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 보인다. KBO 고위 관계자는 22일 통화에서 “제한 시간은 점차 줄여간다는 게 원칙이다. 현장과도 꾸준히 소통을 해왔다”면서 “올 시즌이 끝나면 실행위원회를 거쳐 내년 시즌 기준을 확정해서 발표할 계획이다. 견제 제한도 적용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까지 기준이 강화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피치 클록 도입 당시부터 현장에서는 투수들의 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강했다. 제한 시간이 당장 큰 폭으로 줄어든다면 불만의 목소리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KBO가 최근 제도 도입의 최우선 명분으로 강조하고 있는 ‘팬 여론’도 미묘하다. 지난해 KBO가 실시한 팬 성향 조사에 따르면 피치 클록 도입 자체는 대다수 팬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막상 경기 시간 단축이 직접 관람 의향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경기 시간이 다른 종목보다 길기 때문에 먹거리나 단체 응원 등 여유 있게 즐길 거리가 더 많다는 의견 또한 작지 않다. 심판 개입의 여지를 최소화하고, 현장의 우려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제도 도입의 취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지점을 찾아내는 게 ‘피치 클록 2년 차’에 풀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