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중과실 없으면 처벌 완화' 방안에…시민단체 "의사만 특혜"

2025-03-05

“환자들이 (의료사고로 인해) 느끼는 울분, (의사로부터)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의사의 형사처벌만 면제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5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 열린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정부의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방안 공개(6일)를 하루 앞두고 열렸다. 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환자 생명과 안전 보호에 대한 내용은 없고, 의사에 일방적인 특혜를 주겠다는 얘기만 있다”고 바판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4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꼽고, 관련 대책을 마련해왔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산하에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를 두고 17차 회의까지 진행하며 각계 의견을 모아왔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환자·시민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큰 쟁점은 의료사고 시 형사처벌을 완화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가칭 ‘의료사고심의위원회’라는 기구를 신설해 의료행위의 필수의료·중과실 여부를 따져보고, 단순 과실로 인한 사고로 판단되면 불기소하는 방침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사고에서 의사의 잘못이 큰 경우만 형사절차로 넘기고, 가벼운 과실인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감면한다는 의미다. 최선을 다한 진료에도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법적 책임을 완화해달라는 건 의사들의 오랜 요구사항이다.

반면 환자·시민단체는 정부가 의사의 ‘중과실’로 판단하는 범위가 너무 좁아, 일정 부분 과실이 있는 경우까지 책임이 감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에서 중과실로 규정된 12개 의료행위는 ▶진료기록·CCTV 영상 위·변조 ▶의료분쟁조정 참여 거부 ▶무면허 의료행위·불법대리수술 등이었다. 안기종 대표는 “이 12개 행위를 빼고 나머지를 단순 과실로 보게 되면 사실상 사망을 제외한 경상해·중상해 등은 다 불기소 처분하겠다는 것”이라며 “중과실과 구분이 쉽지 않은 단순 과실까지 불기소하는 것은 우리나라 형법 체계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의개특위 전문위에 참여 중인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도 “정부가 얘기하는 중과실 개념은 오른팔을 수술해야 하는데 왼팔을 수술해버린 경우 등 굉장히 드물게 벌어지는 의료사고에 해당한다”며 “이렇게 한정된 경우에만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의료인에 대해서는 형사 제도를 없애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과도한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의료계는 ‘2013∼2018년 우리나라에서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는 연평균 754.8건이고, 이는 영국의 31.5배다’라는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 자료를 근거로 삼아왔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조사해보니 이는 기소 건수가 아니라 ‘입건’된 건수였다”며 “대법원 판결문, 논문 등을 종합해보면 연간 기소 건수는 30~40건 내외”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특혜 우려가 있는 형사 면책보다 공적 배상체계 마련, 불합리한 수사절차 개선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한양대 디지털융합학과 교수)은 “(의료사고 시) 의사에게 책임이 없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며 “이럴 때는 공적 배상을 도입해 의사도 억울한 피해가 없고, 환자도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져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기종 대표는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환자도 알고 있다”며 “다만 의료사고 발생 시 경위에 대한 설명이나 유감·애도의 표시 등이 이뤄지지 않고,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환자가 피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설명 의무’ 법제화 등 환자들의 울분과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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