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고용의 해법
IT 직업능력개발훈련

컴퓨터 모니터 빼곡히 코드가 올라갔다. 이지수(27·가명)씨의 손끝에서 복잡한 데이터는 깔끔한 그래픽 화면으로 바뀌었다. 이씨는 선천성 청각 장애인이다. 청력이 약하지만 눈과 손끝이 빠르다. 그는 지난해 판교디지털훈련센터의 ‘장애인 ICT 전문가 과정’에서 데이터 분석가 교육을 받았다. 대량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인공지능(AI) 툴로 분석하고, 모델링 작업을 통해 정보를 도출하고, 직관적인 형태의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기술을 배웠다.
장애인 고용이 ‘IT 직업능력개발훈련(이하 직업훈련)’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과거 단순 업무에 머물렀던 장애인 고용이 최근 들어 AI, 데이터 분석, 디지털 콘텐츠 제작 등의 직무로 확장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하 공단)은 기업들과 함께 IT 기반 직업능력개발훈련 교육을 마련해 장애인 고용의 질과 지속성을 높이고 있다.
장애인의 디지털 역량 키우는 기업들
SK그룹은 장애인 IT 인재 육성에 적극적이다. SK C&C를 비롯한 26개 기업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함께 진행하는 ‘씨앗(SIAT: Smart IT Advanced Training)’ 프로그램은 청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경영사무지원 등 IT 직무 맞춤훈련을 제공하고 수료 후 참여 기업에 채용까지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교육생들은 문서 편집, 디지털 콘텐츠 디자인, 온라인 채널 운영 등의 실무를 배우고 SK행복나눔재단과 공단의 지원을 받아 IT 실무교육 뿐아니라 심리재활, PR 스피치 훈련 등도 제공받았다. 지난해까지 훈련 수료생의 93%인 60명이 취업에 성공했고, 프로그램 참여 기업은 누적 51곳에 달한다. 박정하 행복나눔재단 매니저는 “훈련생들이 일할 때 진짜 필요한 역량을 길러 보다 전문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훈련 과목과 커리큘럼을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카카오 역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인 링키지랩을 통해 IT 직무에 장애인 인력을 육성·채용하고 있다. 링키지랩은 시각장애인 헬스키퍼, 디지털 접근성 테스트, AI 학습데이터 구축 등 IT 활용 직무를 개발해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채용 전 인턴 과정을 통해 직무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적합한 인재를 정규 채용하는 식이다. 링키지랩의 김지향씨는 일산직업능력개발원을 거쳐 취업에 성공했다. 김씨는 “직업훈련 당시 기업에서 실제 활용하는 사례 중심의 교육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며 “덕분에 현재 장애인과 노인, 정보소외계층 등도 IT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정보 접근성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산하 구로디지털훈련센터는 포스코1%나눔재단과 함께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장애인 디지털 아카데미’를 운영해왔다. 올해도 기업 연계를 통해 교육 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청장년 장애인을 선발해 28주간 온라인 기초교육(4주), 코딩 심화 프로젝트(20주), 채용 연계 과정(4주)을 지원하는 코딩 전문가 양성 과정이다. 지금까지 총 41명이 과정을 마쳤고 이 중 36명이 KB국민은행·한국인터넷진흥원·메가존·포스코휴먼스·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에 취업했다. 수료생 취업률이 약 88%에 달할 정도로 고용 연계 효과가 뚜렷하다.
공단 산하의 지역 거점 디지털훈련센터들도 기업과 협력해 현장 맞춤형 IT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인천디지털훈련센터는 지난 2023년 프로그램을 대폭 개편하면서 교육 직종의 약 60%를 IT 분야로 확대했다. 2024년 한 해 동안 인천센터를 통해 102명의 장애인이 훈련을 수료했고, 이 중 82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IT 직업훈련 받은 장애인, 취업률 80% 넘어
IT 직업훈련은 장애인의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5.7%, 고용률은 33.8% 수준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불과하다. 반면 IT 직군으로 기업 연계 훈련을 받은 장애인의 취업률은 80~90%에 이른다. 일반직군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편이다. 특히 IT 직무교육을 이수한 장애인들은 수료 즉시 여러 기업과 공공기관으로 취업 연계가 이뤄진다. IT 역량 습득이 장애인들의 노동시장 진입장벽을 낮추는 열쇠라는 평가다.
고용 유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확인된다. 기업과 공단이 연계한 맞춤훈련을 거쳐 채용된 장애인들은 사전 직무교육 덕분에 업무 적응이 빠르고, 기업도 지원 인력을 통해 안정적으로 정착을 돕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이러한 장기근속을 촉진하기 위해 취업성공패키지 참여 장애인이 취업 후 12개월간 고용을 유지하면 150만원의 취업성공 장려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훈련을 통해 얻은 정보기술 자격증이나 포트폴리오는 구직자의 경쟁력을 높이고 취업 후 소득 증가로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AI 시대에 맞는 IT 직무는 장애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장애인들은 실제 직업 현장에서 AI 기술을 비장애인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글로벌 직업컨설팅 기업 랜드스타드의 ‘인재 부족의 이해’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근로자의 55%가 업무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AI 기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비장애인 근로자의 39%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공단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에 대응해 2019년부터 전국에 디지털훈련센터를 확충하고 있다. 서울 구로와 성남 판교 등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10개소 운영 중이며, 2025년까지 13개소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한 공단은 중증장애인 디지털 역량 강화 훈련서비스를 확대하고 취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지원과 민간협력 덕분에 장애인 IT 인재들이 배출되고, 장애인 고용률도 완만하게나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 기업들의 평균 고용률은 3.17%로 10년 전 2.54%에서 꾸준히 높아졌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장애인 고용을 결정짓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역량만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개선과 제도적 뒷받침, 현장 중심의 실질적 훈련 기회”라며 “IT 직업훈련처럼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을 익히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AI 시대, 맞춤형 디지털 교육으로 장애인고용율 높인다

지난 1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000억 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국가 AI 인프라 구축사업인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은 2025년부터 2029년까지 향후 4년 동안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 서비스 등의 AI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파급력은 AI 인프라 확충뿐만 아니라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AI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AI 시대의 도래는 일자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템퍼스AI’는 AI 기반의 정밀 진단·치료 기술로 의료 산업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예전에는 의사들이 수십 시간에 걸려 세웠던 치료 계획이 이제는 AI에 의해 단 몇 시간 만에 수립된다. 인간이 수십 시간을 들여 처리했던 일을 AI는 단 몇 시간 만에 처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AI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AI 시대의 장애인 구직자에게 새로운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 AI 자동화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기존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실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AI 시대에 적합한 디지털 직업훈련이 적절히 이루어진다면, 장애인은 AI 시대의 핵심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AI 도입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디지털 접근성 향상이 강조됨에 따라 장애인 일자리도 새롭게 확장되고 있다. 과거 장애인이 주로 제조업의 단순 조립이나 보조 업무에 진출하였다면, 이제는 IT, 디자인, 원격 고객 상담, 소프트웨어 테스트, 디지털 콘텐츠 제작 등 보다 전문적인 직무에서도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민관이 협력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다양한 직무를 개발하고, 적합한 직업능력개발훈련을 지원한다면 디지털 기술 혁신과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장애인 디지털 인재 양성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하 공단)은 장애인의 직업 역량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단에서는 장애인 맞춤형 직업능력개발훈련을 통해 기업 수요에 맞는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특히 기업 맞춤형 훈련을 설계하는 맞춤훈련센터(2개소), IT 수준별 교육과 IT 분야 취업 연계를 지원하는 디지털훈련센터(10개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디지털 인프라 확대를 통한 디지털 인재 양성을 목표로 2026년까지 디지털훈련센터를 17개소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공단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기숙형 장애인 공공 직업능력개발훈련 기관인 ‘직업능력개발원’을 전국 6개 권역에 운영하고 있다. 특히 경기남부직업능력개발원(경기도 동탄 소재)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공공 장애인 직업능력개발 훈련기관으로 올해 첫 훈련과정을 개시하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AI 데이터 분석, 반도체 품질 분석, 3차원 정밀 측정, ERP 재무분석, 스마트 응용 계측, 디지털융합 사무 등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첨단 기술 중심의 융·복합훈련을 제공하며, 장애인이 AI 시대의 주체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디지털 장애인 인재의 실제적인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서는 이러한 디지털 훈련 인프라 확충에 더해 사회적 관심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와 공단은 매년 4월을 ‘장애인고용 촉진 강조 기간’으로 지정하고, 장애인고용촉진대회 등 다양한 행사와 홍보를 통해 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주역(周易)에 이런 말이 있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어려운 상황(窮)에서는 변화(變)해야 하고, 변화하면 통(通)하고, 통하면 오래간다(久)라는 뜻이다. 공단은 AI 시대의 도래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디지털 직업능력개발훈련이라는 변화를 통해 장애인 인재가 고용시장에서 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AI 시대, 장애인 인재가 AI 시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장애인 고용이 단순한 법적 의무를 넘어,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