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 확정된 ‘동성 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올해 최고 디딤돌 판결

2024-12-08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경향신문이 2024년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동성 배우자에 대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판결을 선정했다.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는 서울경찰청·용산구 관계자 등 이태원 참사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사건 무죄 선고를 뽑았다.

‘2024년 10대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는 민변 내 11개 위원회 등으로부터 지난해 11월1일부터 올해 10월31일까지 나온 각급 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결·결정을 추천받아 디딤돌·걸림돌 판결을 각각 10개씩 선정했다. 사건 특징, 기존 판례와의 견해 차이, 사회에 미친 영향, 인권 증진 기여도 등을 주요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

선정위원회 위원장은 조숙현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가 맡았다. 김소리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위원), 조지훈 변호사(민변 사무총장),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오동석 아주대 교수, 유승익 한동대 교수,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 장예정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정현철 직장갑질119 사무국장, 유선희 경향신문 기자가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민변은 9일 ‘한국인권보고대회’를 열어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결과를 발표하고 주요 인권 현안에 관한 토론회를 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지난 7월 확정했다. 국내에서 사회보장 제도 내 동성부부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소씨가 낸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은 건강보험 제도가 적용되는 사실혼 관계는 ‘남녀 간 결합’이 기본이기 때문에 동성 부부에게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는 동성 부부도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로 봐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소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혼 관계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에서 차별을 받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은 성적지향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해 맺는 ‘동반자 관계’의 가족공동체가 제도 바깥으로 내몰려선 안 된다는 점을 보충의견으로 담았다.

선정위원들은 “그동안 동성 부부는 법과 제도의 부재로 인해 서로 어떠한 권리를 가지거와 의무도 지지 못했으나, 이 판결로 사회보장제도에서 최소한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받게 됐다”고 판결 의의를 짚었다. 이어 “동성 배우자와 이성 배우자의 관계가 실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향후 동성 배우자를 배제하는 다른 제도에 대한 판단에도 중요하게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선정위는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같은 사건에 대한 서울고법 판결을 꼽았다. 선정위는 “2년 연속 같은 사건의 판결을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선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동성 배우자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대법원판결로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 선정위원들이 모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2030년까지만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율’을 규정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 등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도 디딤돌 판결로 선정했다.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 감축목표에 관해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헌재 결정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나왔다.

선정위는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국가의 헌법적 보호 의무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인 날씨, 물 부족, 식량 문제, 해안선 변화 등을 “생태붕괴 현상으로 인한 위험”이라고 명시한 점도 높이 평가받았다.

다만 헌재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정한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이행안도 인용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해 최종 기각됐다. 선정위는 “비록 2030년 목표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으나, 해당 목표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를 결정문에 문장으로 담아 의미가 있다”고 했다.

플랫폼 노동자인 타다 운전기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본 대법원판결도 디딤돌 판결로 꼽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 7월 주식회사 쏘카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쏘카 패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타다 운전기사가 쏘카로부터 업무 내용 등을 지시받고, 근무 시간 등도 결정받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운전기사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선정위는 “갈수록 다양화되는 노무제공 형태를 고려해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성소수자 축복 기도를 한 이동환 목사에게 출교 징계를 내린 기독교대한감리회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 가처분 판결도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민사11부(재판장 송중호)는 “동성애의 규범적 평가는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뀐다”며 지난 7월 본안 소송 결론이 날 때까지 이 목사에 대한 출교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징계의 절차적·실체적 하자를 모두 인정한 데 대해 선정위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이밖에 ‘임대인 실거주 이유 갱신거절에 대한 입증책임이 임대인에게 있다는 대법원판결’ ‘젠더폭력을 난민협약상의 ‘박해’라고 인정한 판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최초로 인정한 판결’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를 허용할 것을 명한 최초의 판결’ ‘청소노동자들의 집회가 소음으로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기각’ ‘방송통신위원회 2인 체제의 심의·의결 위법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MBC 보궐이사 임명처분 집행정지 인용 결정’을 디딤돌 판결로 선정했다.

올해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는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들을 뽑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권성수)는 이태원 참사 당시 부실 대응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류미진 당시 서울청 112상황관리관, 정모 당시 서울청 112상황실 야간 상황팀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선정위는 “예견 가능성의 판단 기준을 ‘다중운집으로 인한 대규모 압사사고’로 지나치게 좁게 설정했다는 점”을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좁은 골목이라는 특성과 다수의 112 신고가 있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어야 한다고 봤다.

또 이태원 참사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금고형 2년을 선고받은 이임재 전 용산서장과 2015년 ‘백남기 농민 사망’ 당시 집회·시위 관리 총책임자였던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이 유죄 선고를 받은 것과 대비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앞서 법원은 이 전 서장과 구 전 청장이 피해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봤다. 반면 이번 판결은 “관리감독자의 책임을 부정해 향후 유사 사건에서 책임자 처벌을 어렵게 만드는 부당한 면책 기준을 제시했다”고 선정위는 밝혔다.

지난 9월에는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가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 관계자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선정위는 “대규모 사회재난에 관한 지자체의 예견 가능성 기준을 당해 재난의 규모 자체로 삼아 과도하게 보수적으로 제시하는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 등에게 전부 무죄 또는 일부 무죄를 선고한 판결들도 걸림돌 판결로 꼽았다. 이들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법관 독립을 침해했다는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이 직권을 남용해가며 관련 사안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선정위는 “구체적 정의에 반하고 사법의 독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걸림돌”이라고 평가했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건을 두고 나온 대법원 선고도 걸림돌 판결로 선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한국서부발전과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법인이 이 사건 컨베이어 벨트 설비의 현황이나 운전원들의 작업방식의 위험성에 관해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 판단을 수긍했다. 선정위는 “구체적인 위험을 고위 경영진이 몰랐다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한 문제적인 판단들”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무력화되는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걸림돌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일당에 형을 감경한 항소심 판결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구제도 어려워진다”며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 인천지법 형사항소1-2부(재판장 정우영)는 미추홀구에서 일어난 2700여 세대의 전세사기 사건에서 실질적인 건축주인 A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7년으로 감형했다. 피해자들의 피해액은 총 536억원에 달했다. 나머지 공범 9명도 징역형 집행유예와 무죄 등으로 형이 줄었다.

사회주의 신념을 가진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대체역 복무를 신청할 수 없다는 판단도 걸림돌 판결로 꼽았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나단씨가 대체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대체역 편입신청 기각결정 취소소송에서 나씨 패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지난 10월 확정했다. 대법원은 나씨의 신념이 확고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수긍했다. 선정위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양심’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고 기계적으로 판단했다”며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매우 후퇴시킨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대통령의 실언 논란 보도에 대해 외교부가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인용’ ‘IS 가입 선동’ 테러방지법 기소사건에 대해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 ‘설악산 오색삭도 공원사업시행을 허가한 판결’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안동완 부장검사 탄핵기각 결정’ ‘코로나19 관련 이태원 기지국 접속자 정보수집 합헌 결정’도 걸림돌 판결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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