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지하철서 영화 보는 시대, ‘중지’ 못할 만큼 재밌는 작품 만들어야”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

2025-09-18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보다 극장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죠. 보는 사람이 ‘일시 중지’ 버튼을 누를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어요.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핸드폰으로 영화를 봐요. 이제 창작자는, 너무나 재밌어서 ‘도저히 중지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야 해요. 극장의 환경, 구조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요.”

18일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이다. 그는 대담자인 마크 톰슨 CNN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넷플릭스 등 OTT가 나오며 사람들이 극장에 가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이렇게 답했다.

이날 컨퍼런스의 주제는 ‘혼돈의 시대, 경계를 넘는 혼종’. ‘이름이 곧 장르’가 된 봉 감독에게 딱 맞는 주제였다. 그의 작품은 한 가지의 장르, 정서, 기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 ‘괴물’에선 전형적인 괴수 영화의 서사와 가족 드라마, 신랄한 사회 풍자를 함께 담았고, ‘기생충’에선 코미디와 스릴러, 공포물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장르뿐 아니다. 2017년 봉 감독은 국내에선 최초로 넷플릭스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 ‘옥자’를 연출하며 유통 플랫폼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유연한 행보를 보였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 봉 감독은 “TV, 인터넷, 케이블, 스트리밍 등 영화를 위협하는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그때마다 영화는 구시대의 산물인 것으로 취급됐다”며 “하지만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AI(인공지능)에 대해서는 “흥분되기도, 두렵기도 한 존재”라고 했다. 그는 “영화 ‘미키 17’에서 한 화면에 두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나오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AI의 도움을 받았다”며 “기술이 어떻게 인간성을 위협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에서조차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는 “나도 아직 혼란 상태”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영화 마케팅을 위해 마케터, 배급자들이 항상 내 작품이 어떤 장르인지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한 마디로 대답하지 못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어 “(장르가 오가는) 이런 특징이 내 영화의 강점이기도 하다”며 “다음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덧붙였다.

K콘텐트의 성장이 다양한 문화와의 결합에서 나왔다는 점도 언급했다. 봉 감독은 “음악 분야의 경우, 인더스트리 전체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적극 흡수하는 개방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든 스튜디오는 한국 회사가 아니다. 외국 회사가 자연스레 (한국 관련 콘텐트를) 만드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이날 봉 감독은 대담자인 톰슨 CEO와의 ‘케미스트리’를 뽐내며 청중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톰슨 CEO는 대담 초반부터 “괴물을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봉 감독은 나의 영웅”이라며 ‘팬심’을 드러냈다. 봉 감독은 “CNN 역시 가짜뉴스의 위협을 받지 않느냐”, “버니 샌더스와 펭귄이 춤추는 가짜 뉴스가 CNN의 로고를 달고 나오면 어쩌냐” 등 언론이 처한 위기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봉 감독이 “새로 만들 영화 속 뉴스 리포팅 장면에 CNN 로고를 쓰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톰슨 CEO가 즉석에서 “하겠다”고 수락하며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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