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파적인 한줄평 : 화려한 오마카세인데, 맛은 영.
값비싼 오마카세 같은데, 뒤로 갈수록 맛은 영 모르겠다. 함의와 비주얼 테크닉이 짙어질 수록, ‘지독하게 화려한 레이어다’라는 생각만 들 뿐, 이야기에 대한 흥미도는 더 높아지질 않는다. 분명 눈으론 맛있어 보이는데, 입을 대려하면 자꾸만 물음표가 뜬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라고 머리로 이해하려 해도 마음으론 좀처럼 감흥을 얻지 못하는, 영화 ‘어쩔수가없다’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미국의 소설인 ‘도끼’를 한국의 언어로 각색해 영상화했다.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 충무로 대표 배우들이 모두 모여 앙상블을 이룬다.

호불호가 분명한 영화가 될 듯 싶다. 우선 미쟝센에 있어선 역시나 ‘박찬욱’ 이름 석자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짙은 녹색과 갈색으로 전체 묵직한 톤을 잡고, 과감한 앵글과 편집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촬영 기술에 관심있는 이라면 상영 내내 매료될 만큼 매 시퀀스 ‘훅’(Hook)을 지니고 있다.
음악을 대사 대신 사용한 점도 웃음을 유발한다. ‘고추잠자리’ ‘구멍난 가슴’ ‘그래 걷자’ 등 오래된 가요들로 인물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며, 대사가 주지 못하는 신선한 느낌을 선사한다. 여기에 전혀 다른 상황에 똑같은 대사를 배치해 마치 언어유희가 주는 넌센스적 재미를 전달한다. 박찬욱 감독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시도라는 데엔 이의가 없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차력쇼’는 작품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한몫한다.
그러나 강력한 약점도 있다. 영화 전체적으로 인물에 공감하고 이야기에 몰입돼 끌려가느냐란 문제에 있어선 ‘글쎄올시다’다. 무엇보다도 ‘만수’가 사건 중심으로 뛰어들게 되는 동기의 힘이 부족하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심정적으로 설득되지 않으니, ‘굳이 저렇게 해야만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관객은 스크린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혹은 그럴 만큼 어리석은 인물이라고 친다면, ‘만수’에게 관객이 연민을 쌓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아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이 어리석은 인물을 우린 믿고 이야기 끝까지 따라가야 하나, 아니면 누굴 응원해야 하나란 문제에 봉착하는 이도 있겠다.
물론 사회적 이면의 아이러니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쓸모가 있겠지만, 대중성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선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는 물음표다. 제작진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의미는 알겠으나, 맛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컬트적인 면모를 강하게 밀고 나갔자면 작품의 개성으로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애매하다. N차 관람으로 곱씹어봐야하나란 생각도 금방 포기하게 된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 개봉은 오는 24일이다.
■고구마지수 : 1개
■수면제지수 : 2.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