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향(丁香; Clove, 학명은 Syzygium aromaticum)이란 정향나무의 열매가 아닌 꽃봉오리를 말하며 꽃이 피기 직전 꽃봉오리를 따서 말려 사용한다. 정향 꽃봉오리 하나의 길이는 3cm 정도인데 크기에 비해 향과 매운맛이 강하다. 이렇게 강한 향을 가진 향신료는 냉장이나 냉동기술이 취약했던 과거에 묵은 고기의 냄새나 맛을 감추는 데 매우 유용했다. 동남아지역 음식에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고기 요리를 즐겨 먹던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정향은 고유의 맛과 향뿐만 아니라 강력한 살균 작용도 있어서 고기에 대한 방부제뿐만 아니라 의약품으로도 활용되었다. 과거 중국에서는 신하가 왕을 알현할 때 정향을 입에 넣음으로써 입 냄새를 가렸다 하고 설사와 구토 증상을 완화시키는 위장약으로도 많이 쓰였다. 정향유는 특히 치과 영역에서 통증 억제 효과와 살균 작용을 이용한 임상 재료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 유럽 나라들에 의해 개척된 대항해 시대인 1500년대에 서양 각국은 인도산 향신료인 후추를 확보하려고 인도로 가는 바닷길을 개척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도 해상무역로를 확보한 다음에 또 하나의 향신료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즉 인도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나라들에 정향(clove)이나 육두구(nutmeg)와 같이 값진 향신료가 무진장으로 널려 있는 향신료제도(spice island)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향신료들을 유럽으로 가져가면 엄청난 시세 차익을 얻을 것이 뻔했는데 이 기회를 가장 적절하게 이용한 나라가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국가적으로 자본을 투입하여 선단을 조직하고 이를 운용할 회사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1602년에 설립되었던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유럽의 다른 경쟁자들에 앞서서 향신료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회사가 지휘권을 가진 해군함대를 보유하고 자체의 화폐 발행 능력까지 확보한 동인도회사는 향신료제도로 일컫던 인도네시아의 ‘몰루카제도’를 지배하다시피 하면서 해상권을 공고하게 다져 나갔다. 특히 정향에 관한 한 생산부터 포장, 수송, 가격결정권까지 독점하여 가격을 조작하고 이윤을 극대화시켰다. 한때 생산량을 줄여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정향나무 숲을 불태우면서 영국이나 포르투갈과 해전을 치르기도 하고 일본으로부터 사무라이 용병을 수입하여 원주민들을 학살하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에 구축된 네덜란드의 정향이나 육두구에 대한 무역 독점 체계는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유지되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인도네시아인들의 저항과 투쟁이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반(反)네덜란드 운동을 벌이다 구금된 소녀가 오랜 단식투쟁을 계속하자 집단 저항을 우려한 네덜란드인들이 몰루카제도의 바다에 소녀를 수장해버린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런 역사를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현재 인도네시아 여권 속표지에는 정향나무와 정향꽃이 그려져 있다.
오늘날 정향은 인도,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스리랑카 등 지구촌의 많은 나라에서 대량으로 재배되고 있으며 후추(Pepper), 계피(Cinnamon;시나몬)와 함께 대중적인 세계 3대 향신료로 취급받고 있을 뿐 그토록 피를 부르던 고귀하고 값비싼 보물의 지위는 이미 상실한 지 오래다. 향료나 약재로 쓰이는 부분은 주로 말린 꽃봉오리인데 생긴 모양이 마치 못과 비슷하기 때문에 정(丁; 못)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약재로서의 정향은 위장관 질환으로 발생하는 구토, 복통, 소화불량(활명 수, 노루모 등 위장약에 대부분 함유)과 성 기능 증대 목적으로도 쓰인다. 위장질환과 관련된 약리작용으로 위액분비 촉진, 진통, 항경련, 항염, 항혈전, 항균, 구충, 혈압강하 작용 등이 보고되었다.
정향에는 독특한 냄새의 원인물질인 유지놀(Eugenol)과 함께 각종 섬유질, 비타민 K, 비타민 C, 망간 등의 함량이 풍부하다. 유지놀은 페닐프로 파노이드(Phenylpropanoid)계 화합물에 속한다. 정향의 꽃봉오리에서 추출 된 유지놀은 무색에서부터 엷은 노란색에 이르는 아로마(Aroma) 유액이다. 정향에서 추출한 아로마 유액의 정유 함량은 대략 15~20%이고 유지놀이 그중 72~90%를 차지한다. 그 외에도 아세틸유제놀(Acetyl eugenol), 베타카리오필렌(β-caryophyllene), 탄닌(tanin), 바닐린(vanillin 4-Hydroxy-3 methoxybenzaldehyde) 등 기타 항산화 성분의 함량도 높다.
정향에 들어 있는 항산화 성분의 수치를 나타내는 ORAC Value는 290이다. 특히 베타카리오필렌의 작용으로 종양 촉진 유전자의 활성을 차단해 암 세포의 성장이나 전이를 막아주고 염증 반응도 억제한다. 헬리코박터 파이 로리(Helicobacter pylori) 감염률은 인도네시아와 한국에서 거의 같은 비율로 나타나지만 정향의 암세포 억제 효과에 의해 인도네시아의 위암 발생률은 매우 저조하게 나타난다. 즉 위암 발생률이 한국보다 인도네시아가 1,000배나 더 낮은 이유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일상생활 중 향신료로 정향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정향 꽃봉오리의 증류 과정을 거쳐 추출하는 유지놀은 치과 영역에서 각종 구강 질환에 대한 진통 및 살균제로 과거 300여 년간 사용되어온 역사가 있다. 유지놀은 방부 효과가 있어서 구강 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 대한 살균과 중식 억제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구강 내 점막 질환이나 연조직 질환뿐만 아니라 치아 경조직 질환인 치아우식증이나 파절, 치수염 등의 치료를 위해서도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된다. 이는 유지놀 고유의 진통 작용, 즉 유지놀에 의한 통증수용단백(TRPV1) 감소 효과로 발현되는 진통 작용과 진정 작용, 그리고 방부 및 살균 효과를 이용하는 치과용제로 널리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또한 유지놀은 구강 내의 점막과 지질 및 타액 분비관 등도 통과하여 쉽게 침투하므로 구강점막 질환 치유를 위한 효과도 장시간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치과 치료 시 사용되는 ZOE는 정향유에 산화아연을 교반하여 만드는 Cement로써 그 실용성과 효용성이 클 뿐만 아니라 가봉재나 접착제로 사용된 다음에 계속 유리되어 침출되는 유지놀 성분에 의한 치태조절이나 구내염 또는 치은염의 지속적인 개선 효과까지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치의학박사
- 전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
-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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