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도약'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지목하며 대대적 투자를 예고한 가운데,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디지털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기업과 병원, 연구기관 등이 합심해 AI 의료기기로 대변하는 혁신의료기기 생태계가 조성되는 등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강력한 데이터 규제, 열악한 창업 생태계, 투자 위축 등이 겹치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커녕 국내 생존까지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I 씨앗이 되는 데이터 활용과 함께 신속 시장 진입을 위한 규제 개선, 병원 내 연구 활성화 정책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혁신의료기기 시장 진입, 걸림돌 많아
25일 전자신문, 최수진의원실이 주최하고 분당서울대병원이 주관한 '바이오헬스 디지털혁신포럼 의료기기 분과 현장 간담회'에선 혁신의료기기의 신속 시장진입을 위한 규제 개선, 연구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AI 의료기기, 최소침습 의료기기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혁신의료기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시장진입에는 여전히 애를 먹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등 국가적으로 AI 투자에 나선 국가와도 의료 분야에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영 한국스마트의료기기산업진흥재단 부이사장은 “동남아시아에선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의료기기에 대한 수요도 많다”면서 “하지만 국내 의료AI 업체들이 자국에서도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서 해외 진출은 더더욱 요원해 이런 기회를 중국 등에 빼앗길 위기”라고 진단했다.
혁신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위해선 규제기관의 기술 이해도를 높이고, 임상 검증이 된 경우 허가 기간을 대폭 단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병은 에이아이트릭스 부사장은 “신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평가, 검증하기에 쉽지 않은 만큼 규제당국의 이해도가 필수”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조차 SW 인력을 150명 이상 채용하는 등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규제기관의 혁신의료기기 이해도와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종욱 에이티센스 대표는 “의료기기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선 허가를 통한 제품 출시와 수가 획득이 필수”라며 “엄격한 임상검증을 거쳐 유효성, 안전성이 확인될 경우 현재보다 허가 기관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데이터·연구 생태계 혁신 시급
정부가 마이데이터 사업 등으로 의료 데이터 활용을 확대하고 있지만 의료기기 시장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오히려 활용을 강화하면서 보호규제는 더 촘촘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구 목적으로 데이터 활용은 보호조치를 전제조건으로 개방을 확대하고, 기업에겐 데이터 사용료 등을 통해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세준 분당서울대병원 의료기기연구개발센터장은 “정부가 수년 간 의료 데이터 개방을 강조하지만 최근 AI 연구를 위한 데이터 규제는 강화됐다”면서 “내부에선 기존 AI 연구를 위한 임상시험심사위원회(IBRB)외에도 데이터심의위원회까지 만들어져 승인을 받아야 하며, 다기관 연구는 각 병원장 승인까지 필요해 제약이 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이학종 분당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은 “메이요클리닉의 경우 연구 목적으로 익명화된 환자 데이터셋을 클라우드에 올리고, 계약을 체결한 기업에 한해 이를 이용하는 동시에 의사까지 컨설팅을 지원한다”면서 “현재 우리나라 병원에선 EMR 데이터라 하더라도 AI 활용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규제도 많은데 글로벌 사례를 참고해 혁신적인 연구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의료AI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도 제도 지원을 약속했다.
손미정 식품의약품안전처 디지털의료제품 TF팀장은 “우리 정부는 세계 최초로 올해 1월 디지털의료제품법을 시행해 AI 의료기기 등 혁신의료기기 전주기 지원에 나서고 있다”면서 “연내 임상시험, 허가 등 전 영역에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해 기업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바이오헬스디지털혁신포럼 공동의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와 IT 역량을 보유한 만큼 혁신의료기기 분야에서도 글로벌 최고가될 잠재력이 있다”면서 “기술 진보 속도와 비교해 우리나라 규제 개선이 다소 늦다는 지적이 제기되는데, 혁신의료기기의 신속 시장 진입과 기업-병원의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