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하나 관찰하기

2025-09-11

비 그친 뒤 숲에는 돌연 적막. 이윽고 공중이 비의 발을 모두 거두자 잎사귀마다 물방울 하나 만들려는 안간힘이 빗발친다. 아무래도 널찍한 활엽수보다 새침한 침엽수가 물방울 만들기에는 유리한 구조다. 그냥 덧없이 증발되기보다는 한 방울이라도 되어 뿌리 근처로 뛰어내리려는 빗방울들의 갸륵한 노력.

그 물방울 떨어져 들꽃이 먹는 이슬이 되고, 그런 광경을 보고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런 시를 남겼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떠도는 먼지에서 몸을 읽고 뒹구는 모래에서 세계를 찾는 것은 실로 대단한 통찰이다. 거미줄처럼 가는 줄기에 얹힌 들꽃에서 하늘나라를 발견하다니!

감나무에 맺힌 물방울에서 뜻밖의 무늬를 알아차리고 시를 쓴 소년도 있다. “빗방울에/ 풍경이 비치고 있다/ 방울 속에/ 다른 세계가 있다.” 이후 ‘나무와 풀을 주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된 그는 그 빗방울이 내어준 길을 따라 걸어, 세심히 보고 끊임없이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물방울을 짚고 세상으로 나아가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이야기.

빗방울은 하늘에서 내리고, 물방울은 지하에서 솟고, 시간은 사방에서 착실하게 온다. 아득한 수평선이 푸르른 물결로 다가와 해안 절벽에 부딪혀 흰 파도로 부서지듯, 검던 머리가 희게 변했다. 나도 곧 어느 벽을 만난다는 징후인가. 그 어디로 횡단해야 하는 시기. 어제하고 다른 생각이 필요하다.

한 알, 한 송이, 한 방울. 이제까지 천하를 담는 저 작은 그릇의 존재들에 감탄했다면 오늘은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본다. 대체 어떤 변신술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이 무량한 세계는 모래와 들꽃과 빗방울 속에 오롯이 담기는가.

어제와 내일 사이에 낀 납작한 시간에서 플라스틱 같은 생각도 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러나 이 천변만화하는 세계에서 영원한 건 없다. 윤회는 물론 죽음 이후에 전개될 지옥과 천당이 어찌 가능하지 않겠니? 그런 궁리도 무람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은 풀잎마다 이슬 맺힌다는 백로, 방울방울 눈물 같은 물방울이 온다. 감쪽같이 살아야겠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