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경제·외교의 지렛대

2024-09-22

몇 년 전만 해도 소프트파워를 믿지 않았다. 한류가 한국에 긍정적 국가 이미지를 제공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며, 문화산업에서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문화 강국이 소프트파워를 사용해 다른 국가의 경제적·외교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을 품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 수년에 걸쳐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실제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류는 한국에 실질적인 경제적·외교적 이익을 가져다줬다.

한류가 긍정적 국가 이미지 조성

외국인의 한국 투자에 기여하고

외교 정책 목표 달성에도 도움 줘

댄스 안무 사업을 하는 내 제자가 서울대에서 여름 학기 수업을 가르친 적이 있다. 유럽 출신인 그는 K팝의 창의적 안무가 세계 다른 지역의 댄서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기준을 설정했는지 나에게 설명했다. 다른 나라의 안무가들이 SM엔터테인먼트 같은 회사와 협력하고 배우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에 자국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더 많은 사업을 의미한다.

이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 한국 콘텐트 수출이 13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전기자동차나 가전제품의 가치를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 사례도 있다. 한국은 지난해 기록적인 규모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했다. 한국의 첨단 기술과 혁신 경제, 고도로 숙련된 근로자, 중국의 경제적 어려움, 미·중 경쟁이 한국의 성공에 기여한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한국의 소프트파워도 기여했다. 한국 문화의 매력은 잠재적인 투자자·기업가와 그 가족이 서울과 한국 전역의 다른 도시로 이주하도록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몇 년 전 용산 서울글로벌스타트업센터에서 외국 기업인들과 인터뷰를 했다. 외국 기업인들이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게 된 주요 이유는 한국의 창의적이고 기술 중심적인 경제, 한국 정부의 지원, 한류 세 가지였다. 이들 상당수가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K팝을 듣거나, 한국 웹툰을 읽으며 자랐다. 이는 외국인 기업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다른 국가보다 한국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다.

외교의 세계에서 한국 정부가 한류를 이용해 긍정적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중요한 외교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중국에 안보 문제에서 덜 공격적 입장을 취하도록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이긴다면 미국이 한국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프트파워는 다른 면에서 한국에 도움이 된다. 한국의 미래 대전략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많은 외국 외교관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한류와 관련해 한국에 따뜻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나 그들의 가족이 한류를 즐겼다. 그들이 당연히 자국의 입장을 옹호하고 홍보해야 했지만, 소프트파워는 한국 측에 협상에서 얼음을 깨는 출발점이 됐고, 때로는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공통의 관심사와 경험을 제공했다.

또 한류 스타들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외교 정책 우선순위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윤석열 정부는 배우 이정재나 K팝 스타 ITZY 등 여러 아티스트를 동원해 부산 2030 엑스포 입찰을 지원했다. 결국 실패했지만, 이 스타들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BTS를 미래 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사로 임명했다. BTS는 유엔에서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한국을 더 인정받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정부와 아티스트 간의 이러한 협력은 일부 팬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많은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이니셔티브 홍보에 큰 이점을 가진다.

K팝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국인들은 BTS·블랙핑크·스트레이키즈·에스파 같은 K팝 스타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들은 한국 문화산업뿐 아니라 한국 전체에 세계인이 주목하게 한다. 이는 다시 한국인에게 더 큰 기회로 이어진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라몬 파체코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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