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말이 없다…사자명예훼손과 ‘사후 모욕’, 그리고 플랫폼의 책임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Law 이슈]

2025-10-10

1세대 유튜버 대도서관(본명 나동현)이 지난달 6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게임 방송과 창작 콘텐트로 구독자 145만 명을 확보하며 크리에이터 시대를 연 상징적 인물이었기에, 온라인은 애도의 물결로 채워졌다.

그러나 곧바로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한 유튜버가 고인을 향한 원색적인 욕설과 조롱을 장시간 이어간 것이다. 과거 함께 출연했던 방송 화면을 끌어와 고인의 행적을 희화화했고, 현재 그 영상은 멤버십 전용 콘텐트로 전환돼 수익을 내는 상태다. 애도와 조롱이 교차한 이 장면은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라는 물음을 남긴다.

형법 제308조는 사자(死者)의 명예도 보호하지만, ‘허위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단순 욕설·조롱은 ‘허위 사실’이 아니기에 사자명예훼손죄로 다루기 어렵고, 모욕죄 역시 생존인을 전제로 하기에 사망자에 대한 모욕은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중의 상식과 법의 문구가 어긋나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길이 막힌 것은 아니다.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판례는 유족의 인격적 이익, 즉 ‘추모감정’을 보호해 손해배상이나 삭제·차단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이번처럼 욕설이 장시간 반복되고, 멤버십으로 수익화까지 이루어진 경우라면 위자료 액수도 높게 책정될 여지가 크다. 문제는 절차가 느리고, 피해자 측이 직접 소송 부담을 져야 한다는 현실이다.

여기에 플랫폼의 집행 공백이 겹친다. 유튜브는 ‘클린 콘텐트 캠페인’을 내세워 유해 방송을 막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신고 의존 구조에 머물러 있다. 멤버십·비공개 영역은 더 사각지대다. 결과적으로 법의 협소함과 플랫폼 집행의 느슨함 사이에서 대중은 무력감을 느낀다.

문제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생성형 AI(인공지능)가 고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손쉽게 합성하는 시대가 이미 열렸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인과 대화하는 ‘AI 추모 아바타’ 서비스까지 등장해 유족이 실제로 고인의 음성·외모를 복원하며 장례·분향에 활용하기도 한다. 동시에 딥페이크·AI 음성 합성 기술은 허위정보나 악성 영상 등으로 디지털 사자명예훼손과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도 대응 차원에서 AI 딥페이크 판별 모델을 개발해 수사에 활용하고 있지만, 기술 악용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이와 함께 국회에서는 올해 사자모욕죄 신설을 포함한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사망자를 모욕하거나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는 “표현의 자유 침해”, “공인·역사적 인물 비판 위축”, “모욕 개념의 불명확성”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유족 보호 필요성과 공론장 위축 위험 사이의 격론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해외는 이미 대응을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사망 후 70년간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다. 독일은 10년, 일본은 판례를 통해 제한적으로 보호한다. 한국도 일정 기간(예: 30~50년) 동안 유족이 동의·금지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일반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AI 합성물에는 반드시 라벨링·출처 공개 등 진위 식별 장치를 법제화해 소비자가 콘텐트 성격을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세워야 할 축은 셋이다. 형사법은 좁고, 민사 구제는 더디며, 플랫폼 집행은 불투명하다. 이 세 축을 동시에 강화하지 않으면 ‘사후 모욕’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고인은 반박할 수 없다. 법과 플랫폼, 그리고 우리 사회의 윤리가 그 침묵을 대신 지켜야 한다. 사망자의 얼굴과 목소리까지 소환하는 AI 시대, 부재한 이를 대하는 태도야말로 공론장의 품격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된다.

필자소개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여년간 SBS PD와 제작사 대표로서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불새’, ‘행진’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서 넷플릭스·아마존스튜디오·JTBC스튜디오 등의 프로덕션 법률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해왔다. 현재 콘텐트 기업들에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YH&CO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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