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투자은행(IB)과 애널리스트들의 리서치 부분을 강제로 분리시켰던 ‘글로벌 리서치 애널리스트 합의’가 폐기된데 대해 금융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규제 부담의 완화와 효율성”를 명목으로 이 합의를 이달 들어 종료키로 했다.
이에대해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 SEC위원장 아서 레빗(Arthur Levitt)의 기고를 게재, “합의 폐기는 위험한 선택”이라며 “규제가 느슨해질수록 리서치의 독립성은 훼손되고, 또 다른 대형 스캔들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 합의는 20여년 전 닷컴버블 당시 드러난 애널리스트와 투자은행간의 유착에 대한 재발 방지를 위해 도입됐었다. 2000년대 초,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IB의 수수료 수익을 위해 투자자들을 속이며 부실 기업에 ‘매수’ 의견을 내는 등 심각한 이해충돌을 보였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레빗은 미국 금융당국이 월스트리트의 타락했던 어두운 과거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SEC가 투자은행과 리서치 부문 간 유착을 차단해온 ‘글로벌 리서치 애널리스트 합의’를 공식 폐기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이 제공하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리서치에 의존한다. 그러나 약 20년 전, 조사당국은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심각한 이해상충에 빠져 투자자들을 오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소속 은행의 투자은행 부서와 협력해 은행의 수익을 창출하는 데 가담하고 있었다.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한 애널리스트는 공개적으로는 한 기업을 “매수(Buy)”로 평가하면서도, 동료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는 그 회사를 “쓰레기(pig)”라고 불렀다. 메릴린치의 한 애널리스트는 특정 주식을 공개적으로는 매수 추천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은행 고객들에게는 그 주식을 사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다른 회사를 적극 추천하면서도, 이메일에서는 그 회사를 “형편없는 회사(POS)”라고 표현했다.
어느 순간 그는 동료로부터 이런 메모를 받았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돈을 잃게 하고 있어. 난 이게 싫어. 우리가 (투자은행 고객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존과 메리 스미스는 노후자금을 잃고 있어”.
리서치 애널리스트들은 진실을 말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를 함께 파는 공동 마케터로 행동했다. 투자은행가들은 애널리스트의 의견과 보고서 발표 시점을 좌우해 투자은행 수수료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는 명백한 범죄적 행위(outrage)였다.
닷컴 버블 붕괴로 투자자들이 수십억 달러(수조 원)를 잃은 뒤, 뉴욕주 검찰총장이던 엘리엇 스피처는 이러한 최악의 남용과 실패를 밝혀냈다. 이 조사에 자극받아, 미 SEC는 2003년 ‘글로벌 리서치 애널리스트 합의(Global Research Analyst Settlement)’라는 광범위한 법적 합의를 했다. 이를 통해, 은행의 리서치 부문과 IB 부문을 분리하도록 의무화했다. 당시 SEC 위원장이던 윌리엄 도널드슨은 리서치 애널리스트들이 은행 투자의 “치어리더”가 됐다고 말했다. 이는 정확한 지적이었다.
올해 초 여러 은행은 이 글로벌 합의를 종료해 달라는 신청을 제기했다. 이들은 다른 규제들이 이미 존재해 2003년 규제가 중복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번 12월, SEC는 “규제 준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이 합의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글로벌 합의는 결코 중복 규제가 아니다. 오히려 은행들이 이 규제를 피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합의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조항, 즉 IB들이 몇년간 가장 불만을 제기해 온 부분은 IB와 리서치 애널리스트 사이의 ‘방화벽’이었다.
이 방화벽은 침투 불가능해야 했다. 은행 내부에서조차, 감독이 없는 상태의 △사업 관련 대화, △이메일, △회의, △문자 메시지 등 그 어떤 형태의 협업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방화벽은 양측을 모두 보호했다. 외부에서는 투자은행이 리서치를 오염시키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레빗의 경험상, 많은 리서치 애널리스트들 역시 오염되기를 원했다. 은행이 잘되면 그들 역시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가와 애널리스트의 통화를 감독하는 ‘동석자(chaperone)’ 제도는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설계됐다. 감시자가 없으면 두 집단은 기꺼이 공모해 은행의 수익을 키웠기 때문이다.
글로벌 합의는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리서치에 객관성과 독립성의 가능성을 되살렸다. 이는 IB들이 기업 분석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문화를 다시 구축하도록 강제했다.
다른 규제들이 이러한 분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WSJ는 강조했다. 특히 그 규제들에는 방화벽이 없다. 이미 이 규정들조차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약화되고 있다.
금융 규제당국은 애널리스트가 자사 은행의 거래와 관련해 언제 리서치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제한하는 ‘침묵 기간(quiet period)’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규제 후퇴의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WSJ는 비판했다.
글로벌 합의가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엄격한 규칙 아래에서도, IB 수수료의 유혹은 부패를 불러왔다. 2014년 니덤앤컴퍼니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메일에서 이렇게 썼다. “내 인생 전체가 토이저러스 IPO를 위해 포즈를 취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SEC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준법 기준이 더 미끄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머지않아, 아마도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규제당국은 월스트리트 리서치와 관련된 새로운 스캔들을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WSJ는 전망했다.
사람들은 왜 금융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분노하며 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규제당국에 있다. 그들은 은행들이 과거의 교훈을 기억할 것이라 가정한다. 현실에서 월스트리트는 늘 잊는다고 WSJ는 꼬집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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