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청문회가 드러낸 기술과 권력의 오만...이젠 소비자가 바꿔야 한다

2025-12-30

2025년 대한민국 경제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기술적 도약’이 아닌 ‘사회적 신뢰의 붕괴’였다. 우리 일상을 점유한 거대 플랫폼들은 혁신의 이름 뒤에 오만함을 숨겼고, 이를 감시해야 할 정치는 합리적 대안 대신 감정의 배설을 택했다.

외국인 방패에 숨은 쿠팡 오너

품격 없는 국회는 윽박지르기만

잘못 제대로 고치는지 감시해야

특히 이달 열린 국회 청문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단순한 경제 지표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지도층의 ‘낮은 품격’에서 기인하는 리스크임을 자인한 꼴이었다. 이제는 민낯을 드러낸 플랫폼 권력을 바라보는 새로운 ‘구조적 시력’이 필요한 때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와 카카오톡의 ‘누더기 개편’ 논란은 단순한 기술적 사고가 아니었다. 이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두 축인 자본과 정치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빈곤한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특히 지난 1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는 이 비극적인 희극의 정점이었다.

소비자를 수익 데이터로 본 쿠팡

쿠팡은 한국 사회의 정서와 사고의 맥락을 직접 설명하기 어려운 해럴드 로저스 대표를 청문회장에 내세웠다. 글로벌 시대에 최고경영자(CEO)의 국적이나 언어 구사 능력 자체가 결격 사유가 될 순 없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통역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방패 삼아 질문의 본질을 희석하고 답변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전략적 불통’을 선택했다면, 이는 기업이 사태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첫 번째 오판이다.

5만원 보상금 제안 역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닌 마케팅적 수사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조금이나마 쿠팡을 이해하려 했던 소비자마저 반대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국회의 모습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국민을 대표해 기업을 꾸짖고 대안을 찾아야 할 청문회장은 ‘갑질의 투기장’으로 변질되었다. 의원들은 통역이 필요한 증인을 앞에 두고 고함을 지르며 “스톱(Stop)”이라고 윽박질렀다. 맥락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고성으로 묵살하는 장면에서 합리적 검증은 실종되었다. 심지어 한 의원은 격한 욕설까지 섞어가며 질타해,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은 한국의 정치 수준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리스크로 분류했을 것이다.

기업의 태도 역시 오만했다. 로저스 대표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의원들의 질의에 선을 그은 장면은 역설적이었다. 수천만 명의 정보 유출에는 “미국법상 공시 의무가 없다”며 법 뒤에 숨던 기업이, 자신들의 정보 앞에서는 철저한 보안을 내세웠다. 이는 그들이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주체가 아니라 수익을 위한 데이터로만 보고 있음을 자인한 꼴이다.

카카오의 위기도 궤를 같이한다. 올해 카카오톡 업데이트에서 보여준 독단적 결정은 사용자를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 정도로 여기는 오만한 플랫폼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올해 플랫폼 사태의 본질은 ‘기형적 구조’에 있다. 쿠팡은 대관(對官) 조직 운영에 막대한 자원을 쏟으며 규제 방어에는 철저했지만, 정작 보안 시스템이라는 방패는 허술했다. 왜 대한민국은 정보 유출의 온상이 되었는가. 보안을 강화하는 비용보다 유출 후 치르는 대가가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파고들어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실효성 강화’ 같은 정교한 대안을 설계하는 대신, 호통과 망신 주기에 그쳤다.

편리함을 넘어 기업의 태도를 봐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업이 뻔뻔하고 정치가 무능하다면, 남은 것은 소비자의 구조적 시력뿐이다. 단순히 눈앞의 ‘편리함’에만 반응할 때, 기업은 딱 그만큼만 우리를 대우한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싼가?”가 아니라 “보안 투자가 배상 책임보다 이익이 되는 구조인가?”를 물어야 한다. 징벌적 손해 배상은 기업을 향한 단순한 압박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이 보안에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얻은 부당한 이익을 다시 사회적 책임으로 환원시키는 ‘비용의 정상화’다.

소비자가 기업의 ‘태도’와 ‘철학’을 구매의 기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기업은 두려움을 느낀다. 또한 정치를 향해서도 누가 더 크게 호통치느냐가 아니라, ‘정보보호법의 독소 조항을 누가 제거했는지’, ‘집단소송제의 문턱을 누가 낮췄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2025년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의 태도가 미성숙하면 기술이 곧 흉기가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기업의 책임, 정치의 품격, 그리고 소비자의 깨어 있는 주권, 이 세 가지가 맞물리지 않는다면 2026년에도 우리는 똑같은 비극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청문회장에서 들렸던 “스톱”이라는 외침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오만과 무책임을 향해 외쳐야 할 단어가 되어야 한다. 새해에는 기술과 권력 뒤에 숨은 오만이 멈추고, 사람을 존중하는 ‘제도적 상식’이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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