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고 시간 혼동, 성격까지 달라지면 치매 의심

가정의 달 5월은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좋은 때다. 이 시기 부모님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은데, 선물 못지않게 중요한 게 건강 상태 점검이다. 특히 부모님이 자꾸만 깜빡하거나 말수가 줄고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면 단순 노화 현상이 아닌 치매의 신호일 수 있어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강릉아산병원 신경과 최영빈 교수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깜빡깜빡하는 일이 생기지만, 단순한 건망증과 치매는 다르다”며 “두 상태가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기억력 저하의 정도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건망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치매는 뇌의 기능이 점점 나빠지는 질환이다. 건망증일 땐 단어가 잠깐 생각나질 않을 수 있고, 약속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얘기를 해주면 기억해내기도 한다. 치매일 땐 다르다. 단어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약속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 길을 잃는가 하면 시간을 혼동한다. 최 교수는 “특히 기억력만이 아니라 생활 방식과 성격까지 바뀐다면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며 “치매는 조기에 진단하고 관리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진단 통한 치료·관리로 진행 늦춰야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이 나빠지는 병’이 아닌, 뇌세포가 손상되거나 죽으면서 생기는 뇌 질환이다.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의 약 60~70%를 차지한다. 뇌에 비정상적인 단백질(아밀로이드·타우)이 축적되면서 신경세포가 서서히 손상돼 야기된다. 기억력 저하로 시작해 점차 판단력, 언어 능력,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혈관성 치매는 뇌졸중이나 미세한 혈관 손상으로 인해 뇌에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다. 루이소체 치매는 뇌에 루이소체라는 비정상 단백질이 쌓이면서 환각이나 파킨슨 증상 등이 동반되는 치매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병원에선 문진과 인지기능 검사, 혈액검사, 뇌 MRI(자기공명영상)나 CT(컴퓨터단층촬영), 아밀로이드 PET-CT, 신경심리검사 등을 시행한다. 최 교수는 “치매는 단일 질환이 아니라 여러 원인으로 뇌가 손상되면서 생기는 증상들의 모임”이라며 “이들 중 일부는 치료 가능한 치매일 수 있어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와 관리를 통해 진행을 늦추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의 ‘관심’이 치매 관리의 출발점
부모님의 기억력 변화는 가족 입장에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일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의 대응이 치매 치료의 출발점이다. 부모님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따뜻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치매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알아두면 좋은 대응법도 있다. 먼저 비난보단 공감을 해준다. “왜 또 그래요?”라는 말보다는 “괜찮아요, 요즘 저도 자꾸 깜빡해요”처럼 부담을 덜어주는 말이 환자에겐 훨씬 편안하게 느껴진다. 증상과 변화를 기록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기억력 저하나 이상 행동이 나타난 날짜, 상황, 빈도를 간단히 메모해 두면 병원 진료 시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된다.
마지막으로 정기적인 검진을 부드럽게 권유한다. “검사 한번 받아보면 안심이 될 거예요” 같은 말로 자연스럽게 검진을 유도한 다음 가까운 보건소, 치매안심센터를 찾으면 인지기능 선별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가족이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도 내려놓자. 치매안심센터, 지역 복지기관, 간병 상담 등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도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