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 우리 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장 속에는 10조~100조개에 이르는 미생물이 존재하며, 이는 인간 전체 세포 수보다 10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얼핏 오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미생물들은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파트너'입니다.
장내 미생물은 특히 면역 체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건강한 장내 생태계는 곧 강력한 면역력을 의미하며, 반대로 장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질 경우 면역 저하와 다양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장내 미생물, 몸의 방어선을 구축하다
인체는 외부 병원체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피부와 장의 상피조직은 물리적 장벽을 형성하고, 호흡기와 소화기는 산과 점액, 효소 등을 통해 생화학적 방어를 수행합니다. 이 가운데 장 점막은 가장 많은 면역 세포와 미생물이 공존하는 핵심 공간입니다.
장내 유익균은 병원균의 침입을 차단하고, 염증 반응을 조절하며, 전신 면역 체계 형성에도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건강한 장내 환경이 '면역력 있는 몸'을 만든다는 주장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닙니다.

◆ 유익균의 탄생과 쇠퇴, 식습관이 좌우한다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모체로부터 유산균을 전달받아 장내 미생물 군집을 형성합니다. 출산 방식과 모유 수유 여부에 따라 초기 유익균 구성은 달라지며, 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면역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식습관이 변화함에 따라 유익균은 점차 줄어들고, 유해균이 장내 생태계를 점령하게 됩니다. 장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지면 면역력이 약화되며, 알레르기성 질환이나 만성 염증성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집니다.
특히 장내 미생물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은 유해균의 성장을 촉진하는 반면, 식이섬유가 풍부한 자연식품은 유익균의 번식을 돕습니다.
◆ 장내 미생물을 위한 건강한 식사법
프로바이오틱스는 '몸에 이로운 살아있는 균'을 의미합니다. 유산균(Lactobacillus, Bifidobacterium 등)은 병원균 침입을 막고 장 점막 건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김치, 청국장, 사우어크라우트, 요거트 같은 발효식품을 섭취하거나, 프로바이오틱스 건강기능식품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프리바이오틱스는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성분으로, 주로 식이섬유, 이눌린, 올리고당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통곡물, 현미, 콩류, 채소, 과일 등을 특히 껍질째 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영양학회는 성인 남성은 하루 25g, 여성은 20g 이상의 식이섬유 섭취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방식은 곧 장내 생태계를 디자인하는 행위입니다'라는 연구 결과는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 피부 트러블…장내 미생물이 보내는 신호
피부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 면역 시스템에도 문제가 생기고, 이는 피부 트러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염증 유전자가 활성화되면 아토피, 여드름, 민감성 피부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납니다.
장내 미생물은 단순한 소화 보조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면역 체계, 피부 건강, 그리고 전신의 균형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주역입니다. 식습관이라는 작은 선택이 장내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는 우리의 삶의 질에 직결됩니다.
건강한 장내 환경을 가꾸는 것은, 곧 더 건강하고 빛나는 삶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작입니다.
참고문헌
Ercolini, D., & Fogliano, V. (2018). Food design to feed the human gut microbiota.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 66(15), 3754-3758.
Belkaid, Y., & Hand, T. W. (2014). Role of the microbiota in immunity and inflammation. Cell, 157(1), 121–141.
글 / 박태선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1995~)
㈜보타닉센스 대표이사 (2017~)
연세대학교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 (2012~2014)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광고특별위원회 위원장 (2011~2013)
International Journal of Obesity, Editorial Board Member (2011~)
Molecular Nutrition & Food Research, Executive Editorial Board Member (2011~)
미국 스탠포드의과대학 선임연구원 (1994~1995)
미국 팔로알토의학재단연구소 박사후연구원 (1991~1994)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데이비스 캠퍼스) 영양학 박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