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 파는 실손보험, 정부가 왜 건드린다는 걸까?

2025-01-11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 지난 9일 정부는 도수치료, 영양제 주사 등 가벼운 비급여 진료에 대한 실손의료보험 보장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평균 2만원만 내고 10만원짜리 도수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앞으로 출시될 5세대 실손보험에선 최대 9만원까지 본인 부담금이 많아진다는 얘기에요. 나아가 정부는 기존 실손 가입자들도 5세대로 전환할 수 있도록 보상금으로 유인한다는 계획인데요. 보상금도 통하지 않는다면 법을 개정해 갈아타기를 의무화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나옵니다. 실손보험은 민간 보험회사들이 파는 사보험인데, 왜 정부가 나서서 소비자 혜택을 줄이겠다는 걸까요? ‘보험회사 배만 불린다’는 비판에도 정부가 실손보험 개혁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경제뭔데’는 실손보험제도를 뜯어고쳐야 하는 이유와 배경을 짚어봅니다.

실손보험은 처음부터 국민건강보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어요. 2001년 건강보험 재정 위기 이후 정부는 민간에 실손보험 제도를 도입해 의료 보장의 빈 틈을 채우기로 했죠. 사보험이지만 공보험과 함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도록요.

그런 이유로 실손보험은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도 보장해왔어요. 건강보험은 도수치료나 영양제 주사처럼 꼭 필요하다기보다 환자가 선택해서 받을 수 있는 진료에 대한 비용은 보장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의료비를 100% 부담하게 한 거죠. 건강보험이 개입하지 않다보니, 비급여 진료는 정부의 가격 통제도 받지 않아요. 병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실손보험이 비급여 진료비를 전액 혹은 대부분을 보장해주면서 ‘과잉 의료’가 나타났습니다. 의료비는 어차피 보험회사가 낼 테니, 병원과 환자 모두 부담 없이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늘리게 된 거예요. 의료비에 대한 가격 통제가 없고, 환자의 부담률이 낮다보니 병원은 가격을 점점 높여 받았고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급여 진료가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된 이유입니다. 진료비 규모도 10년 새 2배 이상 늘어나 연간 20조원에 달합니다. 실손보험은 도입 이래 한 번도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2022년 117.2%, 2023년 118.3%, 지난해 상반기 118.5%로 계속 늘었습니다.

게다가 실손보험을 악용한 ‘의료쇼핑’의 혜택은 소수에 집중됐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의 9%가 전체 보험금의 80%를 수령했습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소수 아닌 모두가 짊어지죠. 보험사들은 매년 불어가는 손해를 막기 위해 보험료를 거듭 올려왔습니다.

이렇듯 실손보험이 망가지면 그 손해는 보험회사만 받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공보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공보험의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어요. 실손보험으로 인한 과잉 진료는 전체적인 의료비 증가를 부르고, 결국 건강보험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들이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 대신 피부과, 안과 등 비급여 진료를 주로 제공하는 과에 몰리는 현상도 결국 실손보험 문제와 맞물려 있습니다. 서남규 건강보험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은 “(의료현장에서) 비급여 진료가 많이 이뤄지면서 의료 공급자들이 수익이 많은 쪽으로 모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민 의료비 완화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서 비급여 관리가 시급하다”고 말했죠.

정부는 비급여 관리 강화와 실손보험 제도 손질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도수치료처럼 과잉 진료가 의심되는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로 전환해 가격 체계와 진료 기준을 정부가 직접 관리한다는 방침이에요. 이와 함께 앞으로 출시될 ‘5세대 실손보험’의 본인 부담률을 크게 높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실손보험이 새롭게 바뀐다 하더라도, 기존 가입자 수가 이미 3578만명에 달한다는 겁니다. 특히 2017년 3월 이전에 출시된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1582만건)는 재가입 주기가 따로 없어, 원한다면 100세까지 기존 계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1·2세대 실손 가입자들도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5세대로 갈아탈 수 있도록 보험사가 보상금을 지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효과가 없다면, 2세대 이하 초기 실손보험도 재가입이 필요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실손보험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의사의 진료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고,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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