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현대차, 美 사업 계획 수정 만지작

2024-11-07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로 현대자동차그룹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역대 최고 실적 경신의 기반이 된 미국 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크다.

업계 안팎에서는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미국 조지아주의 새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미국 사업 확장의 확실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미국 내 생산 계획을 대대적으로 손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 시각) 미국 전역에서 진행된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295명의 대통령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크게 꺾고 4년 만의 백악관 복귀를 사실상 확정 지었다.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미국 우선주의'로 축약할 수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그의 선거 슬로건에서 볼 수 있듯 세계 경제의 중심에 '위대한 미국'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재집권하게 된 만큼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도 자국 완성차 업체 우대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완성차 사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730만4000대) 합계 기준으로 미국 판매량(165만2821대) 비중은 약 23%로 나란히 18%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유럽보다 비중이 훨씬 크다.

결국 미국 사업을 그르치게 되면 글로벌 사업 전반이 꼬이는 셈이 된다. 물론 그동안 쌓아 올린 사업 실적을 고려할 때 미국 판매량이 급감할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돌발 변수가 나올 것인지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확실한 대비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정부 1기보다 바이든 정부 시대에서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다. 트럼프 1기 시절인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현대차그룹의 연평균 미국 판매량은 129만대 수준이었으나 바이든 집권기에는 약 149만대 수준으로 15.3%가량 판매량이 늘어났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이처럼 판매량을 늘릴 수 있었던 요인은 단연 친환경 자동차의 판매 호조였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자사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특히 전기차는 미국 자동차 업체인 포드와 GM을 제치고 10%대의 현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독보적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테슬라의 확실한 대항마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줄곧 펴온 '반(反) 전기차' 정책 기조는 현대차그룹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전기차 의무 명령 폐지와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완화하는 등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를 우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또한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손질해 전기차 보조금을 대거 축소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현재 미국 정부는 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을 적용해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한해 1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축소를 천명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는 내년 초 이후에는 이 규정이 휴지 조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올려온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정책 기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현대차그룹은 우직하게 미국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심산이다. 현대차그룹이 4분기부터 가동하는 조지아주 HMGMA와 미국 내 기존 생산 시설을 활용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신설 공장인 HMGMA는 현대차그룹의 친환경 차 생산 전진기지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차그룹의 친환경 차는 앞으로 이 공장에서 전량 생산하게 된다.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현행 IRA 규정에 따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인다고 해도 자동차 시장의 무게 중심이 장기적으로 전기차 쪽에 기울고 있는 만큼 이미 생산 시설을 구비한 이상 친환경 차 생산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전략이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차 생산과 판매에 주력하고 트럼프 정부의 정책 변화를 지켜보면서 전기차의 생산 계획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작전은 현재 65% 안팎을 차지하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수출 비중을 낮추고 대신에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될 만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의 증산 여부가 관건이다.

두 공장의 현재 연간 최대 생산량을 합치면 71만대 수준이다. HMGMA의 연간 생산량(30만대)을 합치면 100만대를 조금 넘는다. 미국 내 3개 공장을 총력으로 가동해도 연간 170만대 수준으로 성장한 미국 시장을 커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현지 공장의 증산 없이 국내 공장의 수출 비중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면 트럼프 정부의 관세 장벽에 적잖은 손해를 볼 우려가 있다.

현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에 한국산 자동차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적 기본관세 부과를 공약한 바 있다. 이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현대차그룹이 얻을 손실은 상당해질 전망이다.

관세 부과로 인해 얻는 손실보다 선제적 투자를 통해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공장을 증산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판단된다면 증산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이마저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국내 공장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최종 걸림돌이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앞서 팰리세이드 등 미국 인기 차종의 현지 생산 이전과 HMGMA 신설에 대해 회사 측에 강력 반발한 바 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의견을 최종적으로 정하기가 쉽지 않기에 현대차그룹의 입장이 난처해지게 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트럼프 정부 1기 당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미국 대사로 근무했던 성 김 현대차그룹 대외정책 고문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성 김 고문은 오랫동안 미국 행정부에서 일하면서 쌓아놓은 현지 인적 네트워크가 출중하다.

특히 그가 트럼프 정부 1기에서도 외교 관련 요직을 담당했고 1기 시절 행정 인력이 다시 2기 정부에서 등용될 가능성이 큰 만큼 김 고문이 광범위하게 활동한다면 현대차그룹이 향후 미국 시장에서도 상당한 이득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에서도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했을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실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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