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이미 3년을 넘겼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선이 교착된 채 진지전이 이어지는 이유는 전쟁에서 공격보다 방어가 더 유리하다는 오래된 상식과 함께, 상대의 참호를 돌파할 만큼의 전투력과 병참 능력을 양측 모두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요인에 더해 드론의 등장이 전장의 성격 자체를 바꾸어 놓으며 새로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1차 대전의 진지전은 포와 기관총, 철조망과 지뢰, 그리고 관측병이 전장을 지배했다. 물론 이를 돌파하기 위해 전차와 전투기가 등장해 전쟁 양상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은 그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수많은 드론이 관측병을 대신해 전장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력이 움직이면 곧바로 포착되고, 몇 분 뒤에는 자폭 드론이나 정밀 포탄이 날아온다. 과거처럼 병력을 은밀히 집결시켜 돌파구를 만드는 방식은 사실상 사라졌다.

특히 기갑 돌파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전차나 장갑차는 열 감지 드론과 위성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표적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순간 식별되고, 곧이어 드론과 포병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 러시아군이 대규모 기갑 공세로 전선을 무너뜨리려 했으나 연달아 실패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장은 1차 대전식 참호전의 귀환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포병이나 기관총의 화력이 병력을 묶어두었다면, 지금은 드론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드론의 확산은 전선을 ‘선’에서 ‘면’으로 바꾸어 놓았다. 예전처럼 접촉지대에 보병을 늘어세워 적의 전진을 선으로 막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 접촉지대 전체가 드론이 지배하는 넓은 살상구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진지와 참호의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철조망과 지뢰 대신, 상공에서 내려치는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한 그물망이 설치되고, 상대 드론을 교란하고 탐지하는 전자전 장비와 이를 격추하는 방공 수단이 결합된 하이테크 방어 거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선의 돌파 방식도 달라졌다. 전차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드론을 앞세운 소규모 침투가 기본 전술이 되었다. 드론 영상으로 빈틈을 찾고, 자폭 드론이 먼저 진지를 두드린 뒤 소수의 병력이 오토바이나 소형 차량을 타고 신속하게 그 틈으로 파고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침투 역시 곧 상대 드론이나 병력의 반격에 막혀 전투는 다시 교착된다.
그 결과 전선은 대규모 돌파 없이, 반복적인 소모와 마모를 통해 찔끔찔끔 변화해 왔다. 현재 러시아군이 도네츠크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인 포크롭스크를 곧 함락시킬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역시 수개월간의 소모전 끝에 얻은 성과이다. 벌써 3년이 훌쩍 지난 이 전쟁, 과연 끝이 보이기는 할까?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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