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육면·꽈배기 '1일 1미쉐린' 도장깨기…'꿀잼' 타이중 한달 살기

2024-10-22

10년째 신혼여행 ⑱ 대만 타이중

대만 사람은 ‘위대(胃大)’하다고 생각한다. 위가 거인처럼 크다는 의미다. 식당에서 특히 훠궈 뷔페에서 그들은 소위 ‘먹방 유튜버’처럼 먹는다. 중국의 산해진미들이 대만에도 똑같이 뿌리내려 있는데 이 점을 ‘미쉐린 가이드’도 일찌감치 눈치챘다. 우리 부부가 한 달을 머문 타이중에도 서른 개 가까운 ‘빕 구르망 식당(가성비 맛집)’이 있었다. 도장 찍듯 그 식당들을 하루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니 어느덧 한 달이 지나 있었다.

남편의 여행

지난 1월 타이완 섬 가운데 위치한 도시 타이중에서 한 달을 보냈다. 한국인 여행자 사이에서는 이른바 ‘노잼 도시’로 통하는 지역이다. 소문과 달리 타이중은 한 달 살기 중 제일 재미있는 곳이었다. 노잼 도시라는 악명이 생긴 건 관광객 대부분이 고속열차를 타고 왔다가, 기차역 주변의 허름한 구도심만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떠나기 때문일 테다.

역 앞을 벗어나, ‘타이중의 오페라하우스’라고 할 수 있는 국립가극원과 타이중 시청 부근으로 들어가면 세련되고 느긋한 분위기의 타이중을 만날 수 있다. 호리병 모양의 외관으로 유명한 국립가극원과 칼로 자른 듯 반듯한 시청 건물은 서로 너무 대조적이어서 더 눈길을 끈다.

우리는 4층짜리 오래된 주택에서 한 달간 머물렀는데, 욕실이 딸린 방을 350달러(약 48만원)에 빌릴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도 좋았지만, 시민광장 앞이었던 게 큰 행운이었다. 시민광장은 대만 청춘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타이중의 유행을 이끌어 가는 패션 브랜드와 카페가 광장 주변에 몰려 있어서다. 한강공원처럼 시민광장에 돗자리를 깔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풍경은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마저 평온하게 만든다.

시민공원 주변에는 맛집도 널려 있었다.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된 족발집 ‘푸주앙위안쭈지아(富狀元豬腳)’은 잡내 없이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간장에 푹 졸여진 족발은 색깔만 봐서는 언뜻 짜 보이지만 달콤한 맛이 더 강했다. 껍질과 살코기 모두 흐느적거릴 정도로 식감이 부드러웠다. 한국과 달리 대만의 족발은 고기를 부위 별로 삶는 것이 특징이다. 기호에 따라 뼈·관절·힘줄·살코기·곱창 등을 따로 고를 수 있다. 단품 4000원.

족발집 옆에는 ‘진르미마화(今日蜜麻花之家)’라는 이름의 전통 꿀 꽈배기 가게가 있다. 밀가루 반죽을 길게 뽑고, 이를 엮어 튀긴다는 점에서 우리네 꽈배기와 닮았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도넛처럼 말랑한 식감이 특징인 한국 꽈배기와 달리, 진르미마화의 꽈배기는 쫀득한 과자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대만 사람은 디저트의 쫄깃쫄깃한 맛을 선호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버블티에 들어가는 경단 모양의 ‘쩐주(珍珠)’이다. 이에 살짝 붙을 정도의 쫄깃함을 꿀 꽈배기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아내의 여행

빕 구르망 식당을 스무 군데 이상 방문하면서, 대만 사람들이 왜 그리 열심히 운동하는지도 자연히 알게 됐다. 이렇게 먹다 가는, 해마다 허리 사이즈 기록을 경신하겠구나 싶었다. 해서 타이중에 머무는 동안 틈틈이 등산을 즐겼다. 대만은 해발 2000m가 넘는 고봉이 무려 100개가 넘는데, 대만 최고봉인 옥산 주봉(3952m)에도 올랐다.

타이중에서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약 4시간을 달려 해발 2600m의 옥산 중턱에 닿았다. 종민과 나는 고산에 적응할 겸 주변을 가볍게 산책한 뒤, 둘째 날 새벽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해발 3402m 지점의 산장. 셋째 날이나 넷째 날 새벽에 정상에 오르는 걸 목표로 삼았다. 하나 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날을 잘못 잡았는지 정상으로 갈수록 엄청난 강풍이 불었고, 폭우까지 만나고 말았다. 고산증도 문제였다. 정확히 정상을 50m 남은 지점에서 종민의 입술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우리는 결국 정상 등반을 포기하고 말았다.

악천후에 혼쭐이 난 뒤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다. 뱃속에서 얼큰한 국물 요리를 대령하라고 아우성쳤다. 타이중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시청 뒷골목의 우육면 집 ‘크코우 뉴러우미엔(可口牛肉麵)’으로 향했다. 집마다 김치찌개 맛이 다르듯 대만은 가게마다 우육면의 특색이 남다르다. 이 식당은 소고기의 부드러운 식감이 장점이었다. 중지 손가락 만한 길이의 큰 소고기가 세 점이나 들어가 있는데, 잇몸으로도 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수타로 뽑은 면은 쫄깃했고, 국물도 진했다. 굳이 단점을 하나 뽑자면 펄펄 끓는 국물이 아니었다는 정도? 대만 식당은 한국과 달리 미지근한 국물을 내어준다. 호호 불지 않고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뜨끈한 국물 요리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 못내 아쉽기도 했다.

빕 구르망 식당을 찾아다니는 여행법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좋은 점 몇 가지를 꼽자면 첫째, 다양한 대만 로컬 음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훠궈‧샤오룽바오 같은 대만 대표 요리도 좋지만 한 번쯤 선택의 폭을 넓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 빕 구르망 리스트에는 현지인이 즐기는 토속 음식을 내는 맛집이 대거 포함돼 있다. 둘째, 새로운 동네 탐험이 가능하다. 유명 관광지와 멀리 위치한 식당도 많아, 밥 먹으러 가는 김에 동네 구경까지 할 수 있다. 셋째, 가성비다. 단품 기준 우리 돈 1만원 이하 요리가 대부분이다. 타이중에 있는 동안 주머니 사정, 환율 걱정 없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타이중 한 달 살기 정보

비행시간 : 3시간

날씨 : 10월~4월 추천. 한국의 봄~초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언어 : 중국어, 대만어

물가 : 서울의 3분의2 수준

숙소 : 400달러 이상(시내 중심, 집 전체)

여행작가 부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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