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큰 변곡점을 맞고 있다. 최근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트럼프의 정상외교는 진전 없던 종전협상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전장에서는 병력과 무기에서 유리한 러시아가 우세하다. 시간은 러시아의 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러시아에 축복일까.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 『윈드미어 부인의 부채(Lady Windermere’s Fan)』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또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다.” 이 문장은 인간 욕망의 아이러니와 인생의 복잡한 진실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러시아 우세로 바뀐 러·우 전장
미·러 회담 승자도 단연 푸틴
러의 고립 심화로 쇠퇴 가속화
당장 승리해도 러엔 비극될 것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괴롭다. 그것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의 사랑일 수 있고,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명예나 재산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결핍은 우리를 불행에 빠트린다.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부녀인 샤로테를 사랑한 젊은 청년 베르테르는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자살을 택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가난한 법대생 라스콜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후 극심한 죄책감과 고통에 빠진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원하는 것을 얻는 순간부터 새로운 비극이 시작된다. 프랑스 혁명의 혼란 속에서 코르시카 출신의 가난한 청년 나폴레옹은 군사적 천재성과 야망으로 유럽을 제패했다. 그에게도 결핍이 있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은 영웅 나폴레옹의 인간적인 약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제핀에게 마음을 뺏긴 나폴레옹은 결혼 후에도 그녀에게 집착했다. “당신은 나 없인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을 정복한 황제를 지배한 여성은 조제핀이었다. 그는 황제가 되어 유럽의 정상에 우뚝 섰지만, 그 순간부터 비극을 향해 다가갔다. 과도한 영토확장의 야심은 전 유럽에서 프랑스를 고립시켰다. 오판으로 인한 러시아 원정의 실패와 엘바 섬 유배, 100일의 재집권과 워털루 전투의 패배를 겪으며, 결국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 남긴 말은 “프랑스, 군대, 군대의 수장, 조제핀”이었다. 그는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었고, 그것을 얻음으로써 파멸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은 국가에도해당된다.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黑船)은 쇄국정책을 시행하던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켰다. 일본은 열강의 대포 소리에 놀라고 증기선 군함에 기죽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을 따라잡기 위해 ‘부국강병’을 슬로건으로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었고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부상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연거푸 승리하면서 강대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새로 얻은 과도한 국가적 자신감은 군국주의의 강화와 군사적 팽창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는 결국 진주만 공습이라는 오판을 불렀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2차 대전의 패전국이 되었다.
러시아는 어떤가.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의 승자는 단연 푸틴 대통령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 지도자의 이미지로 외교무대에 복귀했다. 서방에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지만, 평화협상을 끌면서 우크라이나 땅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시간도 벌었다. 전쟁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러시아의 승리는 확실하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러시아에 좋은 것일까. 러시아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러시아에 비극이 될 것이다. 17세기 이래 러시아는 유럽 정치·경제의 본질적인 일부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전쟁으로 유럽을 완전히 잃었다. 유럽은 러시아와의 외교적·경제적 관계를 차단했고 다방면에서 러시아를 봉쇄하고 있다. 러시아의 승리는 제국주의적인 열망을 잠시 충족시키겠지만 러시아의 외교적 고립은 심화될 것이다. 서방경제권으로부터의 고립은 서방의 기술·투자 유입의 차단으로 이어져 러시아 경제의 구조적 쇠퇴를 가속화할 것이다.
인간이든 국가든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는 그것만 보고 달려간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그 도취감과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면 성취는 축복이 아니라 비극이 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비극과 원하는 것을 얻는 비극, 이 인간세계의 아이러니에 대한 오스카 와일드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