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드라마 <보통의 날>은 비교적 생소한 질환인 ‘화농성 한선염’ 환자의 실제 일상을 바탕으로 했다. 주인공은 피부의 심한 ‘종기’ 때문에 학창시절을 지나 직장에서도 늘 타인의 시선을 신경써야 했고 숱한 좌절을 맛본다. 화농성 한선염 인식개선 캠페인에 동참한 가수 이홍기가 자신도 이 질환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과거보다는 병명이 더 알려졌지만, 여전히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은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되는 고충을 겪는다. 김혜원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피부과 교수가 웹드라마 제작을 비롯해 질환 인식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김혜원 교수는 무엇보다 환자들이 각자에게 맞는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돕는 것이 최선의 사회적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 화농성 한선염의 특징적인 증상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화농성 한선염은 진단이 크게 어려운 질환은 아니지만, 발병 초기 일반적인 세균성 종기와 유사한 모양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 모두 오인하기 쉽다. 주로 겨드랑이, 사타구니, 엉덩이 등 땀샘과 모공이 있으면서 마찰이 잦은 부위에 발병하는 특징이 있다. 1년에 2~3번 이상 같은 부위에 반복적으로 재발한다면 화농성 한선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피부 안쪽에서 염증이 퍼지면서 두더지가 굴을 파듯이 염증 통로가 생기는 것으로, 만성화가 진행되면 병변이 잘 없어지지 않고 흉터가 생기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발병 원인은 무엇이고, 어떤 환자군에서 주로 생기나.
“화농성 한선염은 환자 본인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다.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데, 대장염이나 건선 등 다른 만성 염증성 질환들과 공통된 유전적 요인을 보이기도 한다. 국내에선 젊은 남성의 발병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고, 또 엉덩이 부위에 병변이 생기는 환자들이 많은 편이다. 실제 내원하는 환자들을 보면 특히 앉아있는 시간이 긴 중·고교생 시기에 엉덩이 마찰이 늘면서 증상이 시작되거나 오래 앉아 일하는 직업을 가진 경우를 많이 본다.”
- 제작에 함께 참여한 웹드라마에 담긴 이야기는 실제 환자들이 겪는 상황과 얼마나 비슷한가.
“<보통의 날>은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영위할 수 있는 환자 ‘은지’가 여러 고충을 겪는 모습을 담고 있다. 경증, 중등증, 중증의 단계 중에선 중등증 정도의 환자 상태와 비슷하다. 실제 진료 현장에선 드라마보다 훨씬 심한 증상을 겪는 중증 환자들도 많다. 증상이 너무 심해 집 밖에 거의 나가지 못하는 환자도 있었고, 진물과 출혈, 통증 때문에 하루 대부분을 욕조에 있어야 했던 분도 있다. 한번은 실제 진료하던 환자가 자살 시도를 해서 직접 전화해 상태를 확인했던 경험도 있다. 물론 이처럼 아주 심각한 상태에 놓인 중증 환자들도 많지만, 증상이 심하지 않아 국소도포제만으로도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유지하는 경증 환자들도 있다.”
유전·당뇨와 연관‘화농성 한선염’
발병 초기 세균성 종기와 오인 잦아
1년에 수차례 같은 자리에 나면 의심
겨드랑이 등 마찰 잦은 부위가 취약
밀가루·라면·유제품 줄이고 금연을
증상 가벼울 땐 국소도포제로도 충분

- 치료가 잘 돼 기억에 남는 환자도 있나.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치료받으면 경과가 확연히 좋게 나타난다. 화농성 한선염은 뚜렷한 이유 없이 질환의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 기억에 남는 한 남성 환자는 당시 치료제 임상연구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고, 진료 일정도 철저하게 지키면서 금연, 체중 조절, 식단 관리도 열심히 했다. 직장을 그만둘 정도로 증상이 심했지만 현재는 임상연구 종료 후에도 치료제 투약 없이 1~2년째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모범적으로 치료를 받고 호전되는 사례도 자주 본다.”
- 이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진료받으러 오는 환자들도 많이 늘었나.
“실제 환자가 많이 늘고 있다. 특히 최근 6개월 새 많이 알려진 게 체감된다. 질환이 잘 알려지면 1차 의료기관에서도 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질환을 살펴보게 된다. 겨드랑이 종기로 내원하는 환자들에게 사타구니, 엉덩이 부위까지 보다 세심하게 진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화농성 한선염을 진단받고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2·3차 의료기관으로 내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치료방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하다.
“피부 속에 염증이 확산돼 형성되는 농루관이 아직 없고 종기가 가끔 나타나는 정도라면 국소도포제만으로도 질환을 조절할 수 있다. 다만 병변이 생겼을 때 가능한 한 빨리 내원해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이 가벼울 때는 주사를 맞거나, 절개해서 고름을 빼내는 처치만으로도 완화에 도움이 된다. 보다 심각한 통증, 발열, 이물감 등 염증 증상이 1년에 2~4회가량 반복될 경우엔 먼저 화농성 한선염에 특화된 항생제를 처방한다. 이 항생제를 최소 3~4개월 투여하면서 경과를 관찰하고, 치료 반응이 충분하지 않다면 생물학적 제제(표적치료제)를 처방할 수 있다.”
- 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어떤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나.
“환자 입장에선 본인이 겪는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환자를 동일한 약 하나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토피 피부염, 건선 등 다른 피부질환처럼 특정 약제로 치료에 실패했을 때 이를 대신할 다양한 치료 선택지가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 2023년에 화농성 한선염에 처방할 수 있는 생물학적 제제 중 하나가 허가는 됐으나 아직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화농성 한선염은 환자가 소수인 데 비해 증상이 매우 심각하거나 기존 치료제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부가 급여를 적용했으면 좋겠다.”
- 환자들이 일상 속에서 지켜야 할 질환 관리법은 어떤 게 있을까.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하는 환자들은 재발 빈도가 낮은 편이다. 화농성 한선염은 당뇨와도 연관성을 보이는 질환이기 때문에 당 지수가 높은 밀가루, 빵, 라면 등을 피하고 당 지수가 낮은 음식 위주로 섭취하면서 유제품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현실적으론 체중을 감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관리법이다. 식습관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연이다. 흡연은 대표적인 악화 요인이다. 특히 가족력이 있어서 염증이 잘 생기는 체질이라면 처음부터 흡연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 질환은 환자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당뇨처럼 꾸준한 관리를 통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라는 점을 인지했으면 한다. 관리하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질환이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데, 다만 아직도 질환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그래도 최근 10년 새 치료제에 대한 임상연구도 많아지면서 제약사와 의료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니 ‘운이 나빠서 생긴 질환이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