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환절기는 겨울로 향하는 길목에 버티고 있는 ‘복병’이다.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는 봄철 환절기와 달리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쪽으로 날씨가 변화하기 때문에 몸이 움츠러들면서 우리 몸의 면역도 저하되기 쉽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하는 질환 중 하나가 면역력이 떨어진 빈틈을 파고드는 ‘통증의 왕’ 대상포진이다. 한여름에 걸리기 쉬운 질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을철 환절기에 발생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하필 초기 증상이 환절기에 걸리기 쉬운 감기와 비슷하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적절한 치료 시점을 놓치기도 쉽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40대 이상은 고위험군이다. 전문가들은 대상포진은 치료 골든타임을 날리면 신경통 등 합병증이 이어질 수 있어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대상포진 환자 76만 2709명 중 가을철인 9~11월 진료를 받은 환자가 전체의 32.5%인 24만 8144명에 달했다. 대상포진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진 여름철(6~8월) 환자 비율이 35.0%로 큰 차이가 없다. 최은주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대상포진의 원인인 바이러스가 깨어나는 가장 큰 요인은 면역력 저하”라며 “환절기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상포진은 수두의 원인이 되는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활성화를 통해 발병한다. 이 바이러스는 수두가 치료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척수후근신경절이나 삼차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다시 깨어날 수 있다. 특히 몸이 약해지거나 다른 질환으로 인해 면역 기능이 떨어졌을 때 활성화돼 병을 일으킨다. 최 교수는 “이 바이러스는 신체의 뇌와 척수신경절 등에 잠복해 있기 때문에 머리, 얼굴, 눈, 귀, 팔, 다리, 체간 부위에 모두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증상인 발진이 발생한 후 72시간 이내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야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항바이러스제는 초기 감염의 확산을 막고 감염기간과 중증도를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 다른 부위로 전파도 방지한다. 특히 대표적 합병증인 신경통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상포진의 극초기 증상은 감기와 비슷해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 게다가 통증이 발생한 지 4~5일 후에야 수포가 올라오는 탓에 피로 때문에 통증이 생겼다고 생각하기 쉽고 수포도 단순 피부병이라고 넘어갈 수 있다. 조인영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오한과 발열, 메스꺼움, 근육통, 권태감이 생기는 등 마치 감기에 걸린 듯한 증상이 나타난다”면서 “두통과 호흡곤란, 복통, 팔다리 저림 등도 나타나지만 일반적으로 수포가 올라오기 전까지는 확진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치료 시기를 놓치면 통증이 심해지고 발생 부위에 따라 합병증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눈 주위에 생기면 눈에 합병증이 올 수 있고, 바이러스가 안면부나 귀를 침범한 경우에는 안면신경마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대상포진의 가장 대표적 합병증으로 고통을 주는 병은 신경통이다. 바이러스가 깨어나면서 해당 신경절 영역의 말초신경을 손상시키며, 미처 회복되지 못하면 반영구적 신경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상포진 환자의 10~18%가 겪으며, 발병 후 2~3주가 지나고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이를 의심해야 한다. 주로 화끈거리거나 쿡쿡 쑤시고 찌르는 듯한 만성 통증이 나타나며 몇 달 혹은 몇 년간 지속될 수 있다. 작은 접촉이나 마찰에도 심한 통증이 생겨 옷을 입거나 목욕하는 등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준다. 극히 일부지만 바이러스가 운동신경을 건드려 손상을 일으키면 팔과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대상포진이 바이러스성 질환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치료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신경통으로 진행되지 않게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피부에 수포가 생긴 후 1개월 이상 통증이 이어지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판단하고 적극적 치료를 권한다”고 전했다.
결국 대상포진은 예방이 중요하며, 효과적 예방법은 백신 접종이다. 국내에서는 5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대상포진 백신은 발생률을 50~60%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교수는 “예방접종을 하면 대상포진이 발생해도 증상을 약화시키고 신경통으로의 진행도 일부 막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대상포진은 면역력 저하로 발생하기 쉬운 만큼 과로나 스트레스는 피하고 충분히 영양분을 섭취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와 접촉했다고 해서 전염되지는 않지만, 이전에 수두를 앓은 경험이 없는 사람, 어린이나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