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올리고 직원 철수"···SK하이닉스에 선전포고한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

2025-04-17

글로벌 'AI(인공지능) 반도체' 밸류체인의 핵심 플레이어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굳건한 동맹 체제에 미묘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한화세미텍의 가세로 반도체 장비 시장에 지각변동이 발생하면서 입지가 흔들리자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 측이 연일 우회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면서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최근 SK하이닉스 측에 'TC(열압착) 본더' 가격 28% 인상을 통보하는 한편, 이천공장 HBM 생산 현장에 파견한 CS(고객 서비스) 직원 수십명을 회사로 소환했다.

한미반도체의 CS 직원은 SK하이닉스에 공급한 'TC 본더'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관리하고 수리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데, 이번 방침이 떨어짐에 따라 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덧붙여 한미반도체 측이 제품 가격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TC 본더'는 HBM 생산을 위한 필수 장비로, HBM에 쓰이는 D램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칩을 하나씩 열로 압착해 붙이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낙스와 2017년 공동개발에 착수했고 기술적 난제를 풀어 결과물을 도출했다. 이를 통해 TC 본더에서 SK하이닉스의 HBM과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에 합류한 것은 물론,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시장 내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업계에선 경쟁자의 등장이 한미반도체 측 행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SK하이닉스에 HBM용 TC 본더를 홀로 공급해왔는데, 한화세미텍이 새롭게 거래를 시작하면서 독점 구도가 깨진 탓이다.

한화세미텍은 작년부터 SK하이닉스로부터 'TC 본더' 퀄테스트(품질 검증)를 받아왔고 올 들어 합격점을 받았다. 이어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총 420억원 규모(12대로 추정)의 납품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다만 제품 기획 단계부터 SK하이닉스와 함께 했던 한미반도체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나름의 서운함이 있었을 것이란 게 외부의 진단이다.

한화세미텍과의 불편한 관계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현재 양사는 특허 침해 의혹을 놓고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한미반도체 측이 한화세미텍의 장비가 자신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됐다며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현재 한미반도체는 법무법인 세종을, 한화세미텍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각각 대리인으로 선임한 뒤 재판을 준비 중이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도 줄곧 경쟁사에 대한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대내외에 공유한 메시지에서 "우리는 싱가포르 ASMPT, 한국 한화세미텍과 상당한 기술력 차이가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받은 한화세미텍도 흐지부지하게 소량의 수주만 받아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른 한 쪽에선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의 설비 투자 계획을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달 'TC 본더'를 대량으로 발주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는 가운데 입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포석이란 관측이 흘러나온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4월 중 최대 50대(1500억원 규모)의 기기를 주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갈등 국면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HBM과 TC 본더 시장구조나 참여 기업별 생산능력 등을 고려했을 때 서로에게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미반도체의 또 다른 거래처인 마이크론은 기술의 부재로 HBM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TC 본더 발주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SK하이닉스에도 마찬가지다. 이미 한화세미텍에 10여 대를 주문한 상황이라 추가 발주분의 상당수를 한미반도체에 맡겨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미반도체 측 강경 행보에 대해선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기업이 생산을 안정시키는 차원에서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인데, 공급사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압박을 가하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는 의구심에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일거리를 빼앗았다는 일각의 목소리와 관련해서도 '글로벌 1위' 한미반도체엔 어울리지 않는 비유라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측은 이번 사안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도 갈등설을 일축하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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